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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의 한국인의 왜] 무엇이든 묻진 마세요

중앙일보 2014.07.21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수진
국제부문 기자
어김없이 나왔다. “집은 어디세요?”라는 질문. 각오는 돼 있었다. 약 5분 전 모 대사관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이분의 일성은 “몇 년 차라고요? 나이 꽤 되셨네. 애는요?”였다. 물론, 안다. “어디 사세요” “결혼은요” “애는 있어요?”가 흔한 ‘국민 질문’이라는 걸. 하지만 꽤나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는 이분의 무심한 호구 조사엔 왠지 심술이 났다. 그래서 답했다. “한국 살아요.”(속으론 “지구”라고 하고 싶었지만 소심했다.)



 이어지는 그분의 반격. “아니, 서울 어디 사느냐고.” 어쩔 수 없이 “강남 쪽”이라고 둘러댔다. 일반적인 ‘강남’과는 거리가 먼 영등포지만, 어쨌든 강의 이남 아닌가. 그분은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도 강남이라며 전세가가 기자의 집 매매가보다 약 3억원 비싸다는 아파트 이름을 댔다. “안 궁금해요”라고 외쳤지만 (마음 속으로) 결국 그 아파트의 3년간 매매가 추이까지 듣고서야 겨우 탈출했다.



 그분은 내가 어디에 사는지 진짜로 궁금했을까. 아이가 아직 없다고 하자 “35세 넘은 노산이면 기형아 출산 가능성 높다는 건 알죠”라고 던진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걱정일까.



 우리가 으레 던지는 몇몇 질문에 외국인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영어신문에서 일했을 때 기자는 외국인 에디터들에게 “식사하셨어요?”라고 묻곤 했다. 그런데 약 한 달 후 어느 미국인 에디터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인들은 왜 “어디 살아요?” “결혼했어요?”라고 묻느냐고. 자기는 왜 그게 궁금한 건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제3세계 출신 에디터는 “내가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서 점심 굶었을까 봐 묻는 줄 알았다”고까지 했다.



 질문은 때로 송곳이 된다. 우리가 으레 하는 질문이 사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한국인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건 아니다. 이 글은 한국인의 인류학적 특질에 대한 고찰과는 거리가 멀다. 30여 년(정확한 숫자는 비밀)간 이 나라에서 살며 겪은 지극히 개인적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호구 조사보다는 창의적인 질문을 해보는 게 어떨까.



 그렇다면 처음 만난 이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은 걸까. 솔직히, 기자도 잘 모르겠다. 사실 바로 지난주, 처음 만난 분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할 말이 없어지자 기자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댁은 어디세요?” 남의 말 할 때가 아니다.



전수진 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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