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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잊혀질 권리, 진실유포죄, 세월호

중앙일보 2014.07.21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경신
고려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세월호 참사의 시작은 표현의 자유 문제였다. 부패와 비리에 대한 최고의 예방책은 이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고 발생 3개월 전에 청해진해운에서 임금체불을 당한 직원이 세월호의 빈번한 과적관행에 대해 청와대신문고에 올렸다고 한다. 관련 공무원들은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빠 과적 관행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직원이 정말로 빠른 문제 해결을 바랐다면 그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수도권 지역 제주행 수학여행을 세월호가 독점한 상황에서 그 수많은 학부모 중 누군가는 과적의 위험을 주시했을 것이고 세월호의 침몰은 애초에 예방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인의 과오를 고발하는 모든 사람이 형사 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허위로 입증되지 않은 언사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평판을 저하시키는 언사를 발설한 자는 처벌될 수 있다. 물론 형법 제310조에 의해 ‘오로지 공익을 위한’ 언사는 합법으로 인정받지만 어디까지 공익으로 인정받을지 확신이 없는 일반인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익을 인정받지 못해 진실된 고발을 하고도 처벌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실제로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고용주를 실명으로 거론해도 ‘공익’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고, 2013년 현재 아파트노인회 간부의 폭언과 폭행을 고발하는 노인회 회원의 카페글도 ‘공익’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세월호 과적에 대한 고발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실유포죄’는 인권의 보호와 사회의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세월호 후속대책으로 안전위반을 더욱 중하게 처벌하는 법개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좋은 법이 없어서 세월호 사태를 당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법도 그 위반 사실을 알리려는 사람이 항상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미국이 9·11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듯이 우리도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면 그 첫 단추는 진실 유포죄의 폐지다.



 그럼에도 진실유포죄를 도리어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바로 ‘잊혀질 권리’다. 즉 자신의 과오나 상처를 상기시켜주는 글의 유통을 제한할 권리다.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의 비밀 침해가 없는 게시물도 관련 사실을 타인들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면 공론의 장에서 지울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뜻대로 된다면 비리에 대한 고발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 이 권리의 주장자들은 공익적인 고발은 허용될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이것은 왜 헌법에 표현의 자유 조항은 있고 행동의 자유 조항은 없는지를 망각한 답변이다. ‘합법적인 진실이라도 공익적이지 않으면 입을 다물라’는 명령은 개인의 윤리적 독립성에 남겨져야 할 표현과 사상의 영역까지도 집단적 결정으로 재단하겠다는 전체주의의 망령으로 들린다. “잊혀질 권리를 일률적으로 거부하지 말고 게시글 하나씩 따져보자고?” 그렇게 집단적인 돋보기를 들이대는 순간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수많은 개인들의 소통욕구는 증발하거나 지적 게토로 숨어들 것이다.



 그런 의미의 ‘잊혀질 권리’는 어차피 세계 어디에도 입법화된 바 없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정보 주체들이 사적 검열자로 활동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런 위험 때문에 이를테면 유럽개인정보보호규범도 ‘언론행위’에는 적용되지 않아 왔고, 유럽사법재판소는 여기서 ‘언론행위’는 언론사의 행위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에게 사실을 공개하는 행위는 누가 하든 ‘언론행위’에 해당한다고 일찍부터 밝혀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개인정보보호규범을 해석 적용한 구글 스페인 판결에서도 게시글의 유통 자체는 막지 않았고, 구글의 ‘인명검색’에서만 배제했던 것이다. 유럽의회도 ‘잊혀질 권리’ 논의를 폐기하고 ‘자신이 제공한 정보(‘자신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를 삭제할 권리로 대체하였다. ‘잊혀질 권리’는 더 이상 일고의 가치도 없다.



 사실 구글 스페인 판결이 창안한 ‘인명검색에서 배제할 권리’도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지자들은 “누구도 타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은 평가와 선택의 연속이다. 평가와 선택에 필요한 어떤 정보는 타인에 대한 정보일 수도 있고 그 타인은 완벽히 공익과 무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태 이전에 ‘유병언 회사 선박은 12년 전 과적을 했었다’는 정보는 공익적이라는 집단적 판정을 받았을지 불분명하다. 사람들의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한 상황에서, 명예훼손도 아니고 프라이버시 침해도 아닌 어떤 합법적인 정보가 단지 타인에 대한 정보라고 해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검색을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박경신 고려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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