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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국에 전해달라"는 일본의 속마음

중앙일보 2014.07.21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지난주 2박3일 일정으로 언론계 동료 9명과 일본을 다녀왔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나카소네·아소·노다 등 전·현직 총리들을 두루 만났다. 오전·오후로 나눠 일본 여야 국회의원, 언론계 간부, 대학교수 등과 두서너 시간씩 토론을 벌였다. 빡빡한 강행군이었다. 일본 측은 ‘오프 더 레코드’를 주문하면서도 “우리 목소리를 한국에 전해 달라”고 했다. 모순된 요청에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주요 발언을 비(非)실명으로 소개하는 게 아쉽다.



 ▶한·일 정치 지도자들의 스케일이 작아졌다. 자국을 넘어 이웃 나라, 아시아, 나아가 세계 인류의 운명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일본 정치가는 궤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과거사 중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문제는 지금 세대가 풀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중시하는 나라다. 정상끼리 만나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게 중요하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미국을 제치고 서울을 가장 먼저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대형서점 산세이도에 혐한 서적 전문코너가 생겼다는 것은 충격이다. 일본의 혐한 흐름에도 상업주의가 판친다. 혐한 정서가 혐한 기사를 낳기도 하지만, 거꾸로 주간지와 방송·인터넷 등이 시청률과 조회 수에 편승해 혐한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양국의 보도에 냉정한 관리가 필요하다.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보도한다’는 금언을 되새겼으면 한다.



 ▶솔직히 일본에는 “무라야마와 고노는 매국노”라는 비난이 있다. 그런 치명상을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일본 정치가들이 적지 않다. 일본의 혐한 흐름 밑에는 일본인들 사이에 “이미 한국이 우리의 라이벌이 됐다”는 인식도 깔려 있음을 읽어 달라.



 ▶한·일 관계 보도에 ABCD가 중요하다. 정확(accuracy)·균형(balance)·일관성(consistency)이 그것이다. 방향성(direction) 또한 과거에 얽매여 분쟁을 일으키기보다 미래에 맞춰야 한다. 상대방의 나쁜 점을 헐뜯기보다 긍정적인 쪽을 응원할 때다.



 ▶한·일 관계는 경험칙상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는다”로 출발해야 한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은 ‘하면 반드시 상황이 나빠지는’ 짓을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이 그것이다. 국교 정상화 이후 49년간 입씨름을 벌였지만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들이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위안부’ 대신 ‘강제 성노예’라고 부르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흐름이 있다. 양국이 대치의 평행선을 달리기보다 정상끼리 만나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사안이다.



 ▶한국에선 “일본 우경화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일본 민주당 정부 때부터다. 2011년 11월의 교토 정상회담 내용은 한국에 알려진 것과 좀 거리가 있다. 그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8월 독도를 방문하고 천황 사죄 요구 발언을 하면서 엄청나게 나빠졌다. 중·일 관계는 절충시키려 노력하는 인사들이 있지만 한·일 사이에는 흠집만 잡으려는 인물밖에 없어 걱정이다.



 ▶두 나라의 완벽한 인식 공유는 불가능하다. 한·일 관계는 수위를 관리하면서 가야 한다. 서로 ‘틀림’에만 집착해 갈등을 확산시키기보다 서로 ‘다름’부터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과 법치를 공통분모로 삼는 유일한 두 나라다. 양국 간에 문제가 있더라도 솔직히 의견을 교환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임한다면 충분히 풀 수 있다고 본다.



 (※필자 주=아베 총리가 몇몇 주요 사안에 민감한 속내를 밝혔으나 ‘오프 더 레코드’를 걸어 공개하지 못해 안타깝다. 원전 사고로 인한 전력난 때문에 일본은 더웠다. 전직 총리들이 식당 옷장에서 직접 양복 상의를 찾아 입는 소탈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일본 측이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간담회를 시작한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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