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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빠와 나 줄넘기

중앙일보 2014.07.21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경은 숲이고 인물은 두 사람이다. 제목은 ‘아빠와 나 줄넘기’. 국민생활체육회가 주관한 ‘2014 생활체육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재국씨의 작품이다. ‘부자지간 다정한 줄넘기 모습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해설이 달렸다. 재국씨가 아빠인지 사진작가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들일 수도 있겠다.



 추억열차가 출발한다. 오늘은 무궁화호다. 차창에 어리는 풍경이 느리고 시리고 쓰리다. 평생 찍은 사진이 수천 장일 텐데 아버지랑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어찌된 일인가. 함께한 시간이 턱없이 적었고 사진 찍을 여유란 도무지 없었던 까닭이다. 줄넘기는커녕 팔씨름도 한 기억이 없다. 운동회 때 부자지간 줄다리기 많이도 하건만 아버지는 그런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입학식·졸업식 사진에도 종적이 묘연하다. 내게 아버지는 신비주의자다.



 지금까지? 아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들과 나는 사진도 찍고 여행도 다닌다. 우리는 생활체육 대신 생활음악으로 엮였다.(아들이 원해서 한 건 아니었으니 아빠가 ‘엮었다’고 하는 게 맞다.) 내가 어설프게 가사와 곡을 만들고 그걸 아들이 불러서 녹음까지 했다. 제목은 ‘청춘예찬’. “여기는 젊음의 숲 늘 푸른 희망의 땅 우리는 사랑으로 한 마음이 되고 싶어”. 한마디로 건전가요다. 아들은 촌스럽다 느꼈을 거다. 그러나 걱정 안 한다. 아들에게 인정받으려 한 게 아니라 아들과 인정 나누고 싶어서였으니까.



 아내는 생활미술인이다. 동네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인물화 그리기를 배운다. 한 달 수강료가 2만원이란다. 이른바 에버 러닝, 즉 평생교육프로그램이다. 스케치북에 그린 인물화가 장난이 아니다. 내 눈엔 전시회 열어도 좋을 수준으로 보인다. 볼 때마다 감탄한다. 아내는 대꾸 없이 그림에 몰두한다. 우리는 나름 생활예술부부다.



 누가 TV에 나와서 “요즘은 내 인생이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줄넘기가 오버랩된다. 줄은 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줄을 서고 줄을 긋고 줄을 댄다. 위험한 줄타기도 예사로 벌어진다. 그러다가 줄이 꼬이고 줄에서 떨어진다. 돌아보니 인생의 전반기는 감는 시기고 후반기는 푸는 시기다. 지금 너무 꼬인다고 한숨 쉬는 젊은이들은 안심해라. 나중에 잘 풀리려고 그러는 거니까. 오늘은 아내에게 초상화를 부탁해볼까 싶다. 나는 긴 시간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 광경을 아들이 찍는다면 제목은 쉽게 나온다. ‘가족이 별 건가’.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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