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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성공한 외교대통령이 되려면

중앙일보 2014.07.21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박근혜 대통령이 누리는 두 가지 찬사가 있다. 하나는 ‘선거의 여왕’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 대통령’이다. 국내 악재로 지지도가 떨어지다가도 해외순방이나 정상회담 이후에는 어김없이 지지도가 상승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번 방한만 해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던 대통령 지지도가 정상회담 이후 반전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외교 대통령’의 진면목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우려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한·중 정상회담도 현미경으로 헤집어 보면 다른 평가가 적지 않다. 중국 측 역시 정부에서는 이번 회담에 대해 ‘작은 성과’라고 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냉정하다. 시 주석의 ‘매력 외교’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북핵 문제나 남북한 관계, 대일 공조, 아시아 신안보 구상 등 중요한 외교 사안에서는 소득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입이 나온 것은 미국이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언에도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아무리 국빈 방문이라지만 시 주석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각별한 의전과 예우에 대해서도 내심 불만을 표하고 있다. 중국이 제안하고 한국과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가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미동맹이 전략동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그럴 만하다 싶다가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의 운신 폭이 그만큼 좁아졌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일본은 또 어떤가. 아베 내각은 시 주석 방한 일정에 맞춰 대북제재 부분 해제를 발표하고 나섰다. 납치 일본인 문제를 빌미로 북·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선 결과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올해 안에 두 나라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더욱 불쾌한 것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양해하지 않으면 주일미군이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갈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참의원 예산위원회 발언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염두에 둔 말이라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한·일관계가 그만큼이나 나빠졌다는 방증이다.



 러시아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우리 정부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규탄 성명을 낸 후 모스크바의 행보는 크게 달라졌다. 구(舊)소련에 진 북한 부채 중 98억7000만 달러를 탕감해 주는가 하면, 북·러 간에 루블화 결제에도 합의했다. 6자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에 우호적이다. 흡사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측이 손을 맞잡은 형세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공을 들여온 박근혜 정부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최근의 4강 외교에는 곳곳에서 적신호가 깜빡인다. 눈여겨볼 것은 그 교차점에 바로 남북관계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한·중관계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도 북한 문제 때문이고, 이걸 해결하려 중국과 적극적인 스킨십 외교를 전개하다 미국의 오해를 사고 있기도 하다. 일본과 러시아는 아예 ‘북한 카드’를 흔들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남북 문제가 한국의 외교항로에 얼마나 큰 족쇄가 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착점이 남북관계라면 돌파구도 남북관계다. 남북이 평화공존 기류로 접어들면 한·미동맹이 부과하는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미·중 두 나라 사이에 눈치 볼 이유도 사라진다. 한·중관계 개선은 물론 북·중관계도 보다 건설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가 우리를 옥죌 카드도 사라진다.



 북핵 문제 역시 그간의 미국·중국을 통한 ‘외주 외교’를 청산하고 남북 협의를 통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더구나 남북관계 개선은 통일 준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가 지향하는 통일이 북한이 우려하는 제도, 흡수통일이 아니라면 그 성격과 방식에 대해 북측과 협의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엄밀히 말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공존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와 상생의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4강 외교, 그중에서도 한·미, 한·중 외교를 최상위에 두고 남북관계는 그 종속변수로 보는 듯하다. 발걸음이 자꾸 엉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 내놓았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통일 대박론, 드레스덴 구상에 이미 그 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고립, 압박, 봉쇄 같은 냉전의 타성에서 벗어나 화해, 협력의 상식과 순리에 입각하여 대북 정책을 담대하게 실행해 나간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나갈 단초가 열릴 것이다. 그게 ‘성공한 외교 대통령’이 되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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