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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한국 상장사들, 배당 늘릴 때 됐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20 20:35
재계와 증권시장이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을 배당·투자·임금 등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필요하면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혀서다.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사내유보금이란 게 이미 공장 설비나 토지 등에 투입돼 있고, 실제 현금 비중은 20~30%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보금을 배당 등에 쓰도록 압박하면 오히려 투자가 위축되고, 국내 우량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들 배만 불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하게 들리는 얘기다. 실제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도 기업들에게 돈을 좀 풀라는 엄포용이지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업이 자초한 사내유보금 과세 압력

그럼에도 이번 논란은 곱씹어봐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증시 전문가와 투자자들이 정부 방침에 손뼉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증시 참여자들은 쥐꼬리 배당을 참아 왔다. 상장사들이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매진해 미래 기업가치를 키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한 주가 상승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기업 투자가 우선이다. 배당을 압박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상장사들이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와 배당 모두를 소홀히 했고, 그게 한국 증시의 고질적 침체(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했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나마 시장의 기대에 부응한 것은 삼성과 현대차 그룹 정도였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5년 새 상장사 사내 유보금(약 500조 원)은 두 배, 보유 현금(200조 원)은 세 배 이상 늘었다. 거기에는 국민과 시장의 희생과 양보도 적잖게 작용했다. 정부가 반대를 무릅쓰고 법인세를 내려주고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을 전폭 지원했다. 증시는 낮은 배당을 감수했다. 결과는 어떤가. 지금 기업들은 돈은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배당이라도 늘리는 게 도리 아닌가.”



[일러스트 강일구]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은 창피한 수준이다. 일반 주주는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순이익 중 배당으로 돌린 배당성향은 15%, 주가와 비교한 배당수익률은 1.1%에 불과했다.



근래 세계 각국 기업들은 주주 배당을 부쩍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함께 견뎌준 주주들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주주들도 기업이 현금을 쌓아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배당으로 풀라고 압박한다.



독일 상장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금융위기 전 37%였다가 현재 48%로 올라갔다. 순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증시의 배당수익률이 3%나 된다. 독일 국채 10년물(현재 연 1.3%선)보다 2배 이상 높다. 독일 증시의 DAX지수가 7월 초 대망의 1만 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비결 중 하나다.



한국증시 배당수익률 세계 꼴찌

미국도 엇비슷하다. 뉴욕 증시의 배당수익률은 현재 2.3%, 배당성향은 35% 선이다. 독일에 다소 못 미친 것이지만, 미국 기업들은 강력한 주주보상 수단을 또 하나 가동한다. 자사주 매입이다. 최근 1년간 미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무려 5000억 달러(500조 원)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30%나 늘어난 규모다. 배당에 자사주 매입 효과까지 더해 미국 주식투자자들은 매년 5% 정도의 안정적 수익을 사실상 보장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 대상인 미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연 2.5% 선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한국 증시의 배당수익률은 올해 약간 올라 1.25% 선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내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를 통틀어 세계 최하위권이다. 중국(3.6%)·인도네시아(2.0%)·인도(1.6%)는 물론 필리핀(2.1%)에도 뒤진다. 코스피 지수가 몇 년째 1700~2000포인트 박스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의 배당 확대는 바람직하다. 증권업계에선 벌써 올해 코스피 지수 상한선을 기존 2200에서 2400으로 올리는 곳까지 나왔다. 배당주 펀드에 대한 투자문의가 부쩍 늘고 돈이 몰리고 있다. 일부 상장사가 외국인 주주 몫 때문에 배당 늘리기가 힘들다고 하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클 자격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당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보유 현금을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발(R&D) 등에 투입하면 될 일이다. 이는 투자자들도 원하는 바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작은 배당이 모여 증시의 투자심리를 살리는 단비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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