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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행정 vs 타당한 요구 … 양측 만남이 ADR 첫 단추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20 09:12
한국마사회 용산 마권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앞에서 19일 한 시민이 영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사회는 주민들과 이용객의 마찰에 대비해 주변에 경비요원들을 배치했다. 김춘식 기자



전문가 중재 실험장 된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

1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청파로 52번지의 18층짜리 빌딩 앞. 중년 남녀 50여 명이 노란 우산을 받쳐 들고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다. 우산에는 ‘학교는 마음의 등불’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학교 앞 도박장, 엄마가 막아낸다”는 구호도 들려 왔다. 20여 일째 이어지는 인근 주민들의 마권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개장 반대 집회다. 지난 17일 서울서부지법이 10월 말까지의 시범운영을 허용하며 100m 이내에서 영업방해 행위를 할 경우 1인당 5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지만 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판결문이 아직 송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말 화상경마장 개장으로 폭발한 한국마사회와 용산구 주민의 대립은 나날이 커가고 있다. 18일엔 성심여중·고 학생 1000여 명이 건물 앞에서 반대 집회를 했다. 주민들은 한시적 영업 허용과 동시에 화해권고를 한 법원의 결정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주변 부동산값 하락 우려도



주민들 주장의 핵심은 ‘학습권 보호’다. 화상경마장에서 235m 떨어진 곳의 성심여중·고 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 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다. 등·하굣길에 도박 시설 근처를 지나는 것도 문제지만 도박꾼들로 인해 인근이 슬럼화된다는 걱정이다. 주민 황모(49)씨는 “술에 취해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는 이들이 늘었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주거환경 훼손으로 인한 부동산값 하락 우려도 주민들 반대에 한몫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은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좌초로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경마장까지 생겨나니 주민들의 불안 심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주민 윤모(45)씨는 “집 앞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길래 동네가 좋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경마장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마사회는 “장외발매소는 혐오시설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주민 중에는 찬성론자도 있다. 학생들에게 나쁜 효과를 미치는 일도 별로 없고, 주변 부동산값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11일 화상경마장 안에서 만난 주민 김모(32)씨는 “학교와 이곳 사이에 8차선 도로가 있는데, 무슨 영향이 그리 있겠나. 새 시설이 쾌적해 계속 이곳에 올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이전 권유에도 불구하고 마사회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7월 13일자 20면)에서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용산 장외발매소 이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3년이 넘는 시간과 13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들었다. … 시범운영의 결과가 나쁘면 깨끗하게 접겠다는데 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법치주의가 아니다”고 했다.



마사회와 주민의 접점 없는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14일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중재에 착수했다. 서울시의 요청에 따른 일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위원회가 경북 울진의 원전 건설과 관련한 지역 갈등 개입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하는 ‘대안적 분쟁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다.



대통합위는 마사회, 주민 대표, 조정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양측을 접촉 중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가 않다.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마사회와 달리 주민대책위 측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는 한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방 용산화상경마장추방위원회 공동대표는 “영업을 강행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갈등 조정 전문가들은 이 사태를 ‘합법적 행정’과 ‘타당한 주장’이 맞선, 해결이 쉽지 않은 갈등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폐쇄, 주민 우려 사항을 불식하는 대책 마련, 입장객 규모를 1500명에서 500명 선으로 줄이는 축소 운영 등 세가지 방안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수 있겠지만, 절충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모교 부각은 도움 안 돼”



조정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특히 걱정하고 있다. 하나는 주민들이 성심여중·고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라는 것을 부각하며 청와대가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을 언급하면 복잡한 정치적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마사회가 전향적 결정을 하려 해도 ‘대통령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는 점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에서 ‘대통령 모교 없는 우리 동네는 우습게 아느냐’며 화상경마장 이전 요구를 하는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전국구 운동세력’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강문희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변 집단이 개입해 진영 논리에 휩싸이면 힘의 대결 국면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당사자들의 진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정치인도 나서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14일 대통합위를 방문할 때 기자들과 함께 나타났다. 한 조정 전문가는 “임 부시장이 신중하지 못했다. 정치적 쇼로 보일수록 중재는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양측이 우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대로 가면 사법적 판단과 공권력 행사라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마사회도 주민과의 갈등 속에서는 원만하게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다 보면 상생적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박종화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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