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자연 품에서 700일 … ‘살아있음’을 노래하다

중앙선데이 2014.07.18 23:42 384호 16면 지면보기
창체, 에베레스트, 눕체(왼쪽부터) 연작.
“작은 한 점 되어 걸었다. 길을 걷다 보면 앞에 있는 산이, 그 산을 감싸는 구름이, 그 구름 사이를 비집는 빛이, 꿈틀대고 넘실대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

사진작가 이창수의 ‘히말라야 14좌 사진전’

사진작가 이창수(54)가 히말라야에서 느낀 것은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이었다. 한 생명이 우주와 소통하는 그 순간의 열락을 그는 고스란히 마음에, 그리고 카메라에 기록했다.

하여 ‘히말라야 14좌 사진전-이창수, 영원한 찰나’(6월 28일~8월 11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는 단순한 풍경 사진전이 아니다. 2011년 12월부터 700여 일간 에베레스트·K2·칸첸중가·로체·마칼루·초오유·다울라기리·마나슬루·낭가파르바트·안나푸르나·가셔브룸 I·브로드피크·가셔브룸 II·시샤팡마에 이르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의 속살을 하나하나 파고들어가 대자연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 경건하고도 따뜻한 감상문이다.

콩코르디아 광장을 지나가는 포터, 1200 x 1800 mm, 디지털 C프린트
K2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달빛, 1200 x 1800 mm, 잉크젯 피그멘트 프린트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먼저 맞는 것은 거대한 눈(眼)사진이다. 에베레스트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 스투파(탑)에 그려진 부처님 얼굴에서 눈만 클로즈업했다. “내 안의 나를 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담겨있다는 부처님의 눈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뜻이죠.”

수염이 여전히 덥수룩한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이창수 작가가 설명을 시작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상서로운 기운 가득한 ‘임자체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서 본 로체 남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장엄하다. 높이 185cm, 가로 7m50cm에 달하는 크기다. 그 옆으로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봉우리 14개의 사진이 거대한 그림 지도가 되어 벽면 한쪽을 채우고 있다. “봉우리가 보이는 사진은 여기뿐이에요. 이제부터는 풍경이 아니라 제가 히말라야에서 느낀 순간을 잡아낸 모습들입니다.”

그의 설명 뒤로 명상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가 히말라야에서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들었다는 음악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칼루 베이스캠프에서 본 참랑 산줄기나 이탈리아 베이스캠프에서 본 다울라기리의 산줄기 사진은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이걸 보면서 겸재가 떠올랐다”고 했다. 반면 ‘콩고르디아 광장에서 발토로 빙하를 따라서 브로드피크와 K2로 가는 길’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은 마치 물감을 덕지덕지 바르는 작가 오치균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눈더미 사이로 동그마니 앉아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바위 하나. 그는 “이게 바로 (자연과 하나가 된) 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가하면 ‘곤도고르 패스에서 달삼파로 가는 길’ 연작은 거의 탈진 상태에서 가까스로 손가락만 움직여 찍은 작품. 흰 눈과 검정 돌들의 조화가 오묘하다.

자연의 조화는 이 작가가 즐겨 추구하는 장면이다. 기존에 가졌던 사진전 ‘움직이는 산-智異’나 ‘Listen-숨을 듣다’에서도 작가가 눈길을 준 것은 풀 한 포기의 흔들림과 따뜻한 한 자락의 볕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을 마음으로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빛이 쨍하고 퍼지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찰나적 순간, 앞도 뒤도 과거도 미래도 없는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죠.”

‘뎅 마을에서 본 테와 산의 산 그림자’나 ‘딩보체의 저녁 빛’ 같은 장면은 그에게 비로소 ‘하나 건졌다’는 느낌을 준 사진이다.

얌드록초 호수, 1500 x 4300 mm, 잉크젯 피그멘트 프린트
110여 점의 사진과 공예품을 볼 수 있는 전시는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거대한 자연속으로 다가가는 인간을 그린 ‘한걸음의 숨결’에 이어 이제 ‘신에게로’ 코너다. ‘랍룽가 패스에서 펠쿠초 호수 가는 길’이라는 길이 4m80cm 짜리 작품은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평원 위에서 풀 뜯어먹는 양떼와 양치기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의 대립각이 느껴졌다.

그 옆으로 온몸을 대지에 던져 불법승 삼보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오체투지’ 장면이 이어졌다. “히말라야를 찍으면서 감동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두 번 있습니다. 이때는 땅에 엎드려서 사진을 찍는데 정말 눈물이 그치질 않더라고요. 사람이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노력에 감동했기 때문 아닐까 싶었습니다.”

로가온 사원에서 타초르(만국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색색 깃발마다 불경이 적혀 있는데 색깔별로 뜻이 있습니다. 파랑은 하늘, 하양은 설산, 빨강은 흙, 녹색은 숲, 노랑은 사람을 의미하죠. 바람이 세게 부는 만큼 깃발에 적힌 부처님의 진리가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히말라야 자락에 사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나마스떼,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에서는 비록 옷차림은 남루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양떼를 풀어놓고 잠시 쉬고 있는 목동의 미소, 포대를 베개처럼 베고 누워있는 할머니, 모닥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하루의 쉼을 얻은 할아버지의 느긋한 표정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산등성이를 넘는 포터의 발에 초점을 맞춘 ‘쇼티콜라의 포터’는 우리 삶의 무게를 새삼 가늠하게 했다.

‘별이 내게로’ 코너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 사진을 모아놓은 곳. 30초간 열어놓고 별의 온전한 모습을 최대한 담아낸 모습들이다. 더 이상 노출을 주면 궤적이 나타나 별이 별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뒤에서 빛을 쏘아 화려하게 꾸민 ‘초오유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초오유 정상’은 별과 설산과 정상에서 내려오는 랜턴의 빛과 아래에서 야영하는 텐트가 맞물려 마치 히말라야 현장에 서 있는 듯했다.

사진을 보던 관람객들이 주고 받는 얘기가 뒤쪽까지 들렸다. “야, 이렇게 사진으로 다 봤으니 이제 히말라야엔 안 가도 되겠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니까 히말라야에 꼭 가보고 싶어졌어.”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