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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맛, 깊은 맛 … 토박이 줄서는 집 찾아가는 맛 쏠쏠

중앙선데이 2014.07.18 23:52 384호 22면 지면보기
1 우리 부부가 즐겨먹는 충무김밥. 깔끔한 뒷맛이 좋다.
난 더위를 많이 탄다. 그냥 “더위를 많이 탄다”고 이야기하기 민망할 정도로 많이 탄다. 7월 초부터 등에 땀띠가 나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이마까지 땀띠가 났다. 항상 땀방울이 맺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습도까지 높아지면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지치게 된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20> 통영 충무김밥

그런 와중에도 허기는 느껴진다. 다만 그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밥을 해먹는 과정도 더위 속에서는 고난으로 바뀌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뭔가 사먹는 쪽으로 관심이 기울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먹는 것들이 다 그렇듯이, 몇 번 먹다 보면 물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배달되는 음식이 한정적이다 보니 전화기를 들고 메뉴를 고를 선택의 자유마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럴 때는 귀찮더라도 나가야 한다. 귀찮음 때문에 발생하는 짜증이 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짜증보다는 좀 더 참을 만 하니까.

만사 귀찮을 때 떠오르는 메뉴
아기를 돌보미 선생님께 맡겨두고 아내와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섰으나 무얼 먹을지 정하지는 않았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켠 후에도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뜨겁지 않고 간단하고 느끼하지 않고 부담 없는 음식.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결국, 충무김밥이었다. 통영에 살면서 충무김밥을 외식 메뉴로 선택하는 일은 참 재미없어 보일 게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충무김밥은 명동에 있는 게 제일 맛있는 거라 생각했는데…기억 나?”

“그때야 우리가 통영 내려와 산 지 아직 일 년도 안 됐을 때였으니까.”

조수석에 앉아 아마도 웃는 얼굴이었을 게 틀림없었을 아내의 대답에 우리가 이곳에 내려온 지 벌써 3년이 됐다는 생각이 스치며 새삼 시간의 빠른 흐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난 통영 사람들이 그렇게 충무김밥을 많이 먹을 줄은 몰랐어.”

아내의 말에 이번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지의 명물이라 불리는 것들 중 많은 수는 정작 현지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무김밥은 통영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는 메뉴였다. 점심시간에 충무김밥집을 찾으면 외지가 아닌 근처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게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2 여객선터미널 맞은 편의 충무김밥집들. 미묘하지만 맛에는 모두 차이가 있어 더 재미있다. 3 전통방식은 일일이 꼬치에 꽂아두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4 옻칠한 쟁반 위에 올려진 충무김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이렇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용하게 되면 무엇보다 품질이 좋아진다. 뜨내기가 아니라 단골을 보고 장사해야 하는 모든 집이 그렇듯 작은 부분 하나 허투루 내놓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통영의 충무김밥들은 그 맛에 ‘다름’은 있어도 ‘틀림’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다.

물론 우리 부부 역시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작게 말아놓은 김밥과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린 오징어와 어묵들, 아무렇게나 썰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무김치까지 어디 하나 크게 식욕을 잡아끄는 부분은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올 때마다 충무김밥을 사주면서도 크게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재미있는 건 더 이상 서울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던 계절, 그러니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슬슬 충무김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충무김밥의 맛에 길들여져 버렸다.

“그럼 어디로 갈까?”

내 질문에 아내는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사실 우리는 통영에서 내로라하는 집들의 충무김밥은 한 번씩 먹어봤다. 뿐이랴. 아예 다양한 참가자들을 모아 유명 충무김밥집들의 김밥을 모아 시식회까지 한 경험이 있으니 어느 곳의 맛이 어떻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징의 차이는 있어도 수준의 차이는 없으니까.

해산물 꼬치 원형 간직한 집 두곳 뿐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우리가 가장 많이 찾던 곳이었다.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그 충무김밥집은 다른 곳에 비해 단맛이 조금 더 강하고 뒷맛이 깔끔한 편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손님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맛이 산뜻한 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충무김밥의 원형도 놓칠 수는 없는 일. 원래 충무김밥은 꼬치에 여러 해산물을 꽂은 후 그것을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 무김치와 함께 팔았다고 한다. 당연히 다른 곳에 비해 해산물 본래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이제 그렇게 만들고 있는 곳은 통영에서도 단 두 곳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그곳이 여객선터미널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통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또 따로 있다. 거북선과 판옥선이 전시되어 있는 강구안 맞은편에 위치한 그 충무김밥집은 통영 시내 이곳저곳에 지점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통영의 자랑 중 하나인 옻칠로 장식한 쟁반에 김밥을 내놓는 게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그런 겉보기만 좋은 것은 아니다. 맛 역시 깊은 편이라 특히 어른들에게 잘 어울린다.

깊은맛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십여 미터 옆에 있는 집도 여느 곳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가장 앞에 서야 한다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충무김밥을 만들어온 곳이라 자부하는 곳이니까. 그래서인지 그곳의 김밥에서는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오래된 맛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변치 않는 맛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전통과 자존심이 살아 있는 곳이니만큼 언제나 사람이 많아 주말엔 줄을 서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수고스러움을 감수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짧으나마 고민의 시간을 거쳐 우리는 드디어 오랜만에 충무김밥을 먹었다. 갓 말아놓은 김밥과 양념이 잘 배어 있는 해산물들, 시원한 무김치가 애써 나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간단하지만 만족스러웠고 특별하진 않았지만 기분전환도 되었다. 오랫동안 한 가지에 정진해온 노력이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통영을 떠나 다른 어딘가에서 살게 되더라도 반드시 기억날 맛이라는 데에 나와 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공감을 했다. 투박하고 거칠어 보여도 깊은 정에 이끌리게 되는 통영사람들처럼 말이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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