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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88년 국내 쌀값 기준 없어 관세율 적용 난관 예상

중앙선데이 2014.07.20 00:21 384호 7면 지면보기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18일 정부의 쌀시장 전면개방 발표에 항의하며 경찰에게 쌀을 던지고 있다. [서울=뉴시스]
“관세 결정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에 나와 있다.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정부 ‘쌀시장 개방’ 선언 후 남은 과제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쌀 개방(관세화) 기자회견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WTO 회원국과 마찰 없이 수입쌀에 대해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관세율 계산 방식은 사전에 당사국들이 합의한 협정문에 나와 있으니 300~500% 관세 부과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이다. 이 장관의 대답은 “미국ㆍ중국은 한국에 쌀 관세율 150~200%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정부가 쌀 개방을 공식 선언하면서 농민과 소비자의 관심이 수입 관세율에 쏠리고 있다. 미국산 쌀값이 국내산의 3분의 1 수준이기 때문에 고율 관세를 매기지 않으면 한국 쌀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거란 우려 때문이다. 농민들은 이렇게 되면 식량 주권이 위협받을 거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동안 쌀 개방에 대해 “국내 쌀 산업 보호 방식을 의무수입에서 관세화로 바꾸는 것”이라며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강조해 왔다.

과연 정부 뜻대로 마찰 없이 고율 관세를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장관 말대로 관세율을 계산하는 방식은 농업협정에 명시돼 있다. 1986~88년 3년간 국내ㆍ국제 쌀값의 평균치를 구한 뒤 그 차액 비율만큼을 관세율로 정할 수 있다. 당시 국내산 쌀값은 100원이었는데 국제시세는 20원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차액인 80원(국내 쌀값-국제 쌀값)을 다시 국제 쌀값(20원)으로 나눈 뒤(80/20=4), 여기에 100을 곱해 %를 붙이면 400%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를 협정문에선 관세상당치라고 한다. 협정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이 관세상당치에 0.9(선진국은 0.85)를 곱한 수치를 관세율로 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관세율(400%×0.9)은 360%가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계산 방식 자체엔 국제사회에서 다툼이 없다. 이 장관이 “관세 결정 방식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관세율 결정 과정 공개되야”
다툼은 계산식이 아닌, 이 식에 대입할 숫자 때문에 생길 수 있다. 당시의 국내ㆍ국제 쌀값을 얼마로 할 거냐는 문제다. 협정문엔 관세율 계산식에 사용할 국내 쌀값에 대해 ‘지배적인 대표 도매가격을 사용하되 적절한 자료가 없으면 추산치를 사용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지배적인 가격’과 ‘추산치’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1986~88년은 통계청이 국내 쌀값을 조사ㆍ기록하던 시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최대한 높은 수치를 구하려 할 것이고, 미국ㆍ중국 등 쌀 수출국은 최대한 낮은 수치를 적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제 쌀값도 마찬가지다. 국제 쌀값 기준액은 당시 인접국의 수입가격을 쓰도록 돼 있다. 그런데 중국은 30원에 쌀을 수입했는데, 태국은 35원에 수입했다면 여기서도 어느 나라를 인접국으로 볼 거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국내에서도 300~500%까지 다양한 관세율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연구에서는 510%까지 계산됐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는 계산에 쓰일 수치 노출을 극도로 피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300~500%에 정부안이 있다”고 알렸을 뿐이다. 농민단체나 쌀 개방 반대론자들이 “관료들이 밀실에서 관세율 논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쌀 대책팀장은 “관세율 결정 과정이 공개돼야 정부가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 등은 지난달 정부의 관세율 결정 내용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김경규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현재 공식적으로 관세율 자체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결정된 게 없으니 공개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어떤 가격 자료를 관세율 계산 공식에 넣을 건지에 대한 논의 자료가 공개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자국에 유리한 자료를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밀실 협의’라는 식의 지적이 계속 나오면, 고율 관세를 매기는 게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9월까지 관세율 확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미 정부가 검토해둔 방안 중 하나를 꺼내면 되는 일이지만, 9월까지 WTO 각 회원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을 통해 한국의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물밑 작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이후 10~12월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가 없으면 내년 1월 1일부터 쌀 개방이 이뤄진다. WTO 규정엔 관세율 결정에 대해 ‘3개월간 회원국의 이의가 없으면 인증된다’고 나와 있다. 그동안 정부는 관련 시행령을 정비할 예정이다. 쌀의 국제시세가 크게 떨어졌을 때 평소보다 세율을 높이는 특별긴급관세(SSGㆍSpecial Safe Guard) 관련 내용은 관세법 시행령에 반영된다.

일본, 시장 개방 후 수입량 제자리
내년이 되면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WTO 회원국은 필리핀 한 곳만 남는다. 일본은 1999년, 대만은 2003년 각각 쌀시장을 열었다. 이들 나라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2001년까지 쌀시장 개방 유예를 인정받은 나라였지만, 일찍 문을 열었다. 유예기간 동안엔 의무수입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이보다 개방을 일찍 하되 관세를 높게 매기는 게 쌀 농가 보호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의무수입량은 68만2000t으로 굳어져 있다. 이 양을 초과하는 수입쌀에 대해선 ㎏당 341엔(3500원)의 관세를 붙였다. 쌀의 국제시세가 매번 바뀌는 것을 인식해 정액 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이다. 이는 1999년 당시 시세로 계산했을 때 1066%의 관세를 부과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현재도 이 관세액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실질 관세율은 300~400%를 오르내리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현재 일본이 의무수입물량 외에 추가로 수입하는 쌀의 양은 연간 500t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방 유예를 받던 때보다 0.01% 정도 수입량이 늘어난 것이다. 대만도 개방 당시 정한 정액 관세(㎏당 45타이완달러, 1550원)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국제 쌀값이 낮은 수준이어서 대만도 비율이 아닌 금액 기준으로 관세를 정했다. 당시 대만이 의무수입한 쌀은 14만4720t으로 국내 소비량의 8%에 해당했다. 현재 국내 소비량의 9%(40만9000t)를 의무수입하는 한국과 비슷한 사정이었다. 대만 역시 개방 이후 늘어난 수입량은 연간 500t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농민들은 외국에서도 쌀 시장 개방 이후 시장이 잠식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현상유지’(의무수입량을 유지하는 조건의 개방 유예)라는 최선의 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노력 없이 정부가 개방 방침을 먼저 WTO에 알리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유예기간 연장을 WTO에 요청하는 방안도 있는데, 이를 해보지도 않고 개방을 기정사실화한 정부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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