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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과세, 소비·투자 모두 놓치는 악수될 수도

중앙선데이 2014.07.20 02:02 384호 21면 지면보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또 시작됐다. ‘또’라고 쓴 건 이 논란이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논란은 3년 전인 2011년이었다. 당시 국회는 공청회를 열어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2009년 28조원에서 지난해 57조원으로 늘었다”며 “좋게 볼 수가 없다”고 질책했다. “대기업 곳간은 돈더미가 쌓여 터지기 직전”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 창출에는 인색하고 사내현금유보율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쌓아놓기 바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10대 기업 곳간에 100조원이 쌓여 있다’는 요즘과 똑같다.

다시 불거진 기업 과세 논란

 그렇다면 왜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걸까. 대기업의 사내유보에 대한 비판은 타당한 것일까.

 먼저 기업들의 사내유보가 증가한 이유를 살펴보자. 2000년대 중반은 투자 때문이었다. 2001~2005년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1.1%에 그쳤다. 반면 사내유보금은 급증했다. 10대 그룹의 평균 사내유보율은 1997년 336%에서 2004년 600%, 2007년 700%로 높아졌다. 2009년과 2011년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2008~2009년 설비투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비슷하다. 지난해 투자가 감소한데다 올해에도 그 회복세가 미약하다. 여기에 민간소비 부진이 추가됐다. 물론 민간소비 부진은 심각한 문제다.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민간소비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앞지른 건 2005년 딱 한 번 뿐이었다. 민간소비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곧 감소한 이유다(2002년 57%에서 지난해 49%). 여기에 가계 저축률마저 계속 하락하고 있다(2004년 8.1%에서 2012년 4.7%).

 소비도 줄고, 저축도 주는 이유는 뭔가. 경제전문가들이 최근 찾은 해답은 가계소득의 증가세 둔화다. 가계가 차지하는 소득(정확히 말하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국민이 벌어들이는 총소득(국민총처분가능소득) 중에서 차지하는 몫이 줄어드니까 소비와 저축이 모두 부진하다는 주장이다. 맞는 얘기다. 가계소득의 비중은 2003년 60.7%에서 2012년 58.1%로 줄었다. 반면 기업소득의 비중(법인기업 처분가능소득/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2000년 12.8%에서 2012년 18.7%로 높아졌다.

 그럼 가계소득은 왜 줄고 기업소득은 왜 늘었을까. 가계소득의 원천은 크게 네 가지다.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이자배당금이다. 이 가운데 사내유보와 직접 관련 있는 건 임금과 배당이다. 배당소득은 2007년 가장 많았고, 이후엔 계속 줄었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늘긴 하지만 일한 만큼 받진 못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임금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낮다. 물론 그 차액은 기업이 가져간다는 얘기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 최 부총리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투자도 하지 않고 임금과 배당도 적게 준다, 그러면서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다.’ 그러니 사내유보금에 손대겠다는 거다.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여기엔 이견이 있다. 우선 사내유보금이 소비부진의 원인이냐에 대한 이견이다. 가계소득 증가가 부진했기에 소비도 부진했다는 진단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2000년대 이후 그런 추세임에는 맞다. 그러나 이게 소비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가계소득은 2010년 바닥을 친 후 증가하고 있고, 기업소득은 그 반대로 줄고 있는데도 민간소비는 계속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질임금도 마찬가지다. 2008~2010년은 연평균 1.9% 증가에 그쳤지만 2011년 4.6%, 2012년 9.6%로 확 뛰었다.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도 민간소비 비중은 줄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경환 경제팀이 사내유보금을 확 줄여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자. 그래도 소비가 기대만큼 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럼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역시 양극화다.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고소득층보다 높은 건 검증된 사실이다. 만일 최근 2~3년 간 늘어난 소득이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에게 집중됐다면 소비가 그리 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내유보 줄이기에 전념할 일 아니다. 다른 걸 희생해서라도 소비부진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라면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주력하는 게 순서다.

 둘째 사내유보금과 투자 부진의 관련성이다. 사내유보금이 많다고 투자가 부진해지는 건 명백히 아니다. 사내유보금의 개념 상 그렇다. 말이 사내유보금이지, 회사 안에 현금을 쌓아두는 게 아니다. 기업은 유보금(잉여금)으로 공장과 기계설비 등 투자자산을 구입하고, 재고자산을 늘린다. 유보금을 늘리려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학자들의 검증 결과도 그렇다. 내부 유보율이 높은 건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들이 현 정부의 사내유보 과세 방침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도 그렇다. 2006~2007년에도 유보율은 늘었지만 설비투자 역시 연평균 9% 증가했다.

 굳이 투자와 비교하겠다면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현금(현금+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에 주목하는 게 낫다. 하지만 이것 역시 투자 부진과 큰 관련이 없다. 현금 자체가 미래 투자를 위해 갖고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금은 사내유보금의 15.2%(2012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외국보다 많지 않다.

 재벌에 비판적인 경제개혁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가 단적인 증거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자산 대비 현금자산비율은 30개 국가 중 10번째다. 미국·일본·중국은 물론 경쟁국인 대만·싱가포르·홍콩보다 낮다. 또 우리와 비교되는 나라들에서도 현금자산 비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그런데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현금자산을 늘렸기 때문에 투자가 감소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 연구소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실물투자의 불확실성이 감소하지 않는 한 현금자산은 실물투자로 활용되지 않는다”고.

 요약하면 이렇다. 사내유보금은 소비 부진과 투자 부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약이 아니다. 자칫하면 한 마리 토끼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소비 부진을 해결하려면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 투자 부진을 해결하려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잘못된 진단에 따른 처방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 오히려 또다른 병을 키운다. 사내유보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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