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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말기 난소암도 그가 고치면 5년 생존률 60%

중앙선데이 2014.07.20 02:07 384호 22면 지면보기
진료실에선 외과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은 서울에서 온 수련의를 반갑게 맞더니 갑자기 “위암 환자가 소변이 안 나오니 컷다운하고…”란 지시를 내린 뒤 귀가해버렸다.

<24> 국립암센터 박상윤 센터장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박상윤 센터장은 인턴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979년 2월 28일 오후 5시 청주의 충북도립병원 외과 진료실이었다. 머리는 깜깜해졌고 몸은 얼어붙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컷다운이 뭐였더라?’ 얼른 책장에 꽂힌 교과서를 뺐다.

팔의 정맥을 절개한 뒤 도관을 넣어 부은 폐의 압력을 낮추는 것이지, 이렇게, 이렇게…. 그런데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환자는 눈을 껌뻑거리고, 간호사는 메스와 수술가위 등을 준비한 채 ‘젊은 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턴의 머리에서 불현듯 “왜?”가 떠올랐다. 말기 환자인데…. 인턴은 20대인 아들을 불러 “아버지가 임종을 피할 수 없어 댁으로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들은 부친이 병원보다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반색했다.

의사가 택시를 부른 뒤 환자를 현관까지 배웅하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한 마디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턴의 머리가 또다시 깜깜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는 조심스럽게 “병원에서 줄 수 있는 약들은 모두 챙겨 드렸다. 혹시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병원으로 오시면 된다”고 입을 뗐다. 인턴은 환자의 얼굴에서 안심하는 표정을 읽으며 비로소 자신이 의사가 됐음을 실감했다.

박 센터장은 누군가를 도우면서 보람을 찾는 직업을 찾다가 의대로 방향을 틀었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박 센터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강원 사북 소재 동원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복강경 수술을 익혔다. 첫 직장인 차병원에서 복강경 시술 실력을 보여주자 이 병원 차경섭 이사장이 독일 킬 대학의 셈 교수가 저술한 ‘복강경 수술’이란 책을 건네주며 일독을 권했다. 박 센터장이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가 각 문파의 비기(秘技)를 익히는 여정이 시작된 첫 단추였다.

박 센터장은 1987년 당시 ‘암 치료 의사의 로망’이던 원자력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무렵 셈 박사가 싱가포르에서 특강한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내 현지로 달려가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박 센터장은 91년 미국 예일대의 피터 슈왈츠 교수의 문중에 들어가 난소암의 세계를 탐닉했다. 이듬해 3월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미국부인종양학회에서 자궁내막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턱슨 대학교 조엘 칠더 교수, 수술·방사선 동시요법(CORT)의 대가인 독일 마인츠 대학교 마이클 헤켈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다시 그들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99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워싱턴암센터의 폴 슈거베이커 박사를 만났다. 그는 암이 내장에 번졌을 때 복막을 떼어내 치료하는 ‘복막절제술’의 최고수였다. 박 센터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2년 뒤 슈거베이커의 교실을 찾아가 내공을 전수받았다. 귀국 후 세계 처음으로 이 비기를 난소암에 적용했다.

2000년 문을 연 국립암센터는 세계 최고수들의 비기를 고스란히 체득한 박 센터장을 자궁암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최근 발행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관리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자궁경부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6.9%로, 회원국 평균(66%)보다 월등히 높은 1위였다.

박 센터장은 ‘1위 중 1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난소암의 경우에도 세계적으로 5년 생존율이 3기 40%, 4기 15% 이상이면 수준급으로 평가받는데, 박 교수는 둘 다 60%에 가깝다.

박 센터장의 환자는 80% 이상이 다른 종합병원에서 의뢰한 환자들이다. 그는 10~12시간에 걸쳐 외과·흉부외과·정형외과 의사들과 함께 복막과 장기를 절제하며 수술하는 경우도 많다. 국제학계에서 한때 “치료·수술 성적이 너무 뛰어나 진위가 의심스럽다”며 논문 게재가 거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미국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의 데니스 지 박사가 국립암센터에 다녀간 뒤 미국 학계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국제학술지의 환영 저자가 됐다.

박 센터장은 산부인과 명의지만, 외과 환자 환자도 본다. 복막절제술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자 외과 의사들이그에게 의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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