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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 필드의 인간 승리 PR하는 서양 프로, 피하는 한국 프로

중앙선데이 2014.07.20 02:16 384호 23면 지면보기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자인 모 마틴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릴 적 뒷마당에 그물을 치고 골프를 연습했다고 한다. 19살에 고아가 됐다는 얘기도 공개됐다.

동서양 프로 문화 차이

 디 오픈에서도 그런 감동 스토리는 이어졌다. 합성수지 공장에서 일하는 존 싱글턴이 부상과 좌절을 이겨내고 다시 골프에 도전하는 인간승리의 모습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없다. 최경주·박세리·신지애 등 오래된 얘기 말고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아주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실제로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의 성공한 골퍼들 대부분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올랐다. 유복하게 자란 박인비가 성공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절대 다수는 페어웨이가 아니라 러프를 걸어온 선수들이다.

 그들의 얘기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연을 찾아서 소개해야 할 기자들의 책임도 있다. 더 큰 이유는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어려웠던 과거를 공개하기를 꺼린다.

 기자가 아는 프로 중 고아로 자란 선수가 있다. 목욕탕 때밀이를 하면서 돈을 모아 프로 골퍼가 된 사람도 있다. 본인은 레슨을 돕고, 부인은 찬모로 가는 조건으로 전지훈련 팀에 낀 선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남의 집에 맡겨야 했다. “남의 아이들 밥 먹일 때 정작 우리 아이들은 챙겨주지 못했지만 남편을 도와 여기까지 왔다”는 부인의 얘기를 들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알리지 못한다. “창피하니까 그런 얘기를 절대 쓰지 말아 달라. 우리 망신 주려고 그러는 거냐”고 애원한다.

 선수가 어렵던 시절을 숨기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체면 문화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색을 하지 않고, 밥을 굶어도 양반처럼 위신을 지켜야 한다는 딸깍발이 정신 말이다.

 스포츠에서 그건 체면 상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은 골프로 치면 오버파를 안고 시작한 것과 같다. 그 오버파는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것도 아니다. 오버파 출발 선수가 이븐파(평범한 환경)나 혹은 언더파(매우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한 선수들보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훨씬 더 가치가 크다. 단거리 육상으로 비교한다면 다른 선수가 100m나 90m를 달리는 시간에 110m 이상 뛴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어려웠던 환경이 창피가 아니고 자랑이다. 그런 선수는 대중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더 큰 스폰서를 얻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프로 골퍼들의 권위 의식이다. 몇 년 전 한 유명 선수가 큰 대회에서 우승한 후 나이트클럽에서 잠깐 웨이터를 했었다고 공개했다. 이후 선배들에게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고 한다. “창피하게 왜 그런 얘기를 해서 프로들을 망신시키느냐. 프로면 프로답게 입 조심해라.”

 프로 골퍼들을 귀족으로 여기는 듯 한데 실상을 얘기한다면 하면 골프 초창기 때는 ‘프로=캐디’였다. 아마추어 골퍼들 신발을 닦아주고 스핀이 잘 걸리라고 침을 공에 묻혀 티에 올려주곤 하던 사람들이다. 뛰어난 골퍼 중 캐디 출신이 꽤 된다. 골프 스윙을 잘 한다고 해서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가 고귀하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리라. 사회구조는 점점 공고해지고 신데렐라 스토리는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선 계속 희망의 메시지가 나온다. 스포츠 무대는 공정하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아들도 농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스포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듯 하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는 본질적인 이유는 스윙머신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하는 사람을 보고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일 것이다. 골퍼들이 그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또 다른 희망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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