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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계몽주의·산업혁명·기술혁신은 미적분 발견 덕분

중앙선데이 2014.07.20 02:23 384호 24면 지면보기
미분과 적분을 통틀어 미적분이라 하는데, 고등학교 시절 어렵고 복잡한 미적분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생각이 날 것이다.

미적분학(Calculus)은 미분·적분·극한·무한급수를 다루는 기초 수학의 한 분야로서 현대 수학과 응용 과학의 초석이 되고 있다. 물체의 이동·가속도·거리·부피 등이 미적분을 이용하여 계산될 수 있으며, 그것은 일상 생활용품에서 우주선의 발사와 설계 등에 이르기 까지 매우 광범위한 분야들에 응용되고 있다.

이러한 미적분의 기본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한 사람은 누구일까? 영국 사람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업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라 주장하고, 독일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람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일로 동시대에 살던 당대의 최고의 수학자들인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으며, 두 나라 사이의 자존심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둘 다 자신의 방법대로 미적분 개념을 독자적으로 확립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미적분 개념의 최초 아이디어는 뉴턴이 10년쯤 앞섰지만, 정작 아이디어를 책으로 출판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10년 정도 앞섰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미적분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미분이란 x-y 평면에 있는 곡선 위의 한 점에서 접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것이다. x를 변수로 하는 접선의 기울기를 나타내는 식을 도함수라 부르며 f′(x)라 표현한다.

한편 적분은 미분 과정을 거꾸로 수행하는 것으로서 면적이나 체적을 구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그림의 왼쪽은 미분 개념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적분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뉴턴은 20대가 되어서야 천재성이 드러났으며, 27세 때에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됐다. 그는 과수원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는 물질·에너지·운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들을 발견했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의 창안 이외에도 물리학 분야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예견했으며, 지질학, 생물학, 역사학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17세기 미적분 개념의 탄생으로 수학식을 이용한 운동 법칙과 이성적인 계몽주의의 바탕이 마련됐으며, 이후 18세기에 접어 들어 산업 혁명과 기술 혁신의 바탕이 됐다.

[문제 1]에서는 천칭저울에서 균형을 이루는 그림을 머리 속에 개략적으로 스케치해본다. 참외 2개의 무게는 300g이며, 사과가 3개로서 평형을 이루므로 사과 1개의 무게는 100g이 된다.

[문제 2]에서는 기준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노란색을 한 칸 추가한 뒤, 그 두 칸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벌어지며 이동하는 규칙을 찾아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 3]에서는 위의 두 수를 곱한 값의 각 자리의 수를 더한 값이 아래에 있는 수임에 착안한다. 즉 3×4=12에서 1과 2를 더한 값이다.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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