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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의 유럽, 2014년의 동아시아

중앙선데이 2014.07.20 03:08 384호 30면 지면보기
지난달 28일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사라예보 사건 이후 한 달여 만에 독일·프랑스·러시아·영국·이탈리아 등이 각자의 동맹 관계에 따라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급기야는 미국과 일본도 참전하면서, 이 전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최초의 대전쟁(Grand War)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식자들은 왜 사라예보 사건이 극히 짧은 시일 내에 대규모 전쟁으로 확산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유럽 왕조국가들의 비밀 외교, 상호 군비 경쟁, 그리고 민족주의 분출 등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미 MIT 대학 교수인 베리 포젠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 주요국들이 쉴리펜 플랜 등 상호 공격적인 군사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했었다고 분석했다. 다른 학자들은 기존 강대국인 영국에 대해 후발 주자인 독일이 급속하게 국력을 증대시키면서, 상호 긴장과 두려움을 유발시킨 것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구미 국가들은 제1차 대전 종전 이후 국제연맹을 만들어 국가 간의 외교를 공개하고, 국제적인 군비 축소를 추진하고,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동유럽과 중동에 신생 국가들을 독립시키면서 전쟁 원인을 감소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평화구축 노력에도 불구,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과연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까. 러시아의 크림 합병으로 촉발된 동유럽의 민족 분쟁, 혹은 중동지역에서 격화되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분쟁들은 21세기의 국제질서에도 여전히 대규모 국제분쟁의 요인들이 잠복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재의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전개되는 상황에 눈을 돌리면,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해·공군 중심의 원거리 투사능력을 확대하면서, 아시아·태평양 방면에서의 군사활동을 증대시키고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는 일본 및 한국의 기존 구역과 중첩되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고, 남중국해에서도 구단선(九段線)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및 필리핀과 대립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시해온 기존 강대국 미국의 세계전략과 부딪치고 있다. 비록 양국이 신형 대국관계의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전략경제대화 등을 매년 개최하고 있지만, 부상하는 신흥 강국에 대한 기존 강대국의 불안감이 결국 상호 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과연 회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은 새로운 안보전략서에서 중국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주장과, 해·공군력 활동 확대를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그동안 금기시돼 온 해병대 전력 보유를 명시하기 시작했고,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이라는 루비콘 강도 건넜다. 중·일 간 신뢰구축을 위한 정상회담 및 안보협의가 중단된 지도 오래다. 이에 더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대남 공세전략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의 동태도 동아시아 역내의 잠재적 분쟁 유발 요인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잠재적 분쟁의 요인들이 잠복한 동아시아 역내 질서에서 우발적 사건이나 충돌이 발생한다면, 100년 전 사라예보 사건 이후의 유럽이 그러했듯이 지역 전체로 분쟁이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선생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15년 『한국통사』에서 한국이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독립을 유지하려면, 일본·중국·러시아 등 열강들 간에 세력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과연 우리는 동아시아 대국들 간에 박은식 선생이 강조한 균형 외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나아가 전후의 유럽국가들이 그러했듯이, 국가들 간의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역내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다자 안보협의체 구축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6자회담도 재개되지 못하고, 기존에 구축해 놓은 한·중·일 협력 관련 협의체도 원활하게 가동되지 않는 최근의 현실을 타개하는 것에서부터, 역내 분쟁을 억제하기 위한 21세기 균형외교 및 동북아 평화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주요 저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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