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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과학 대가들과 1주일 … 창조 DNA 전수의 현장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20 01:10
1 199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롤프 칭커나겔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왼쪽)가 지난달 30일 린다우 옛 시청에서 열린 ‘대규모 질병 유행의 위협’ 주제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발표 학생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바이오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이렇게 1주일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우선 오전 7시에 시작되는 조찬.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왠지 낯 익다. 사회자가 DNA·노화·암 전문가라고 소개한 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는 마주앉은 학생들을 상대로 ‘과학과 여성’을 주제로 열변을 토한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보는 미래 … 64회 맞은 독일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 참관기



오전 9시부터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으로부터 바이오의 기본인 유전자와 단백질, 2011년 수상자인 줄스 호프먼으로부터 인간과 파리의 선천성 면역력, 2005년 수상자인 베리 마셜로부터는 헬리코박터에 대한 특강 등을 각각 30분씩 연속으로 8차례 듣는다.





점심 식사 후 오후 3시30분부터는 2013년 수상자 아리에 와셸과 2007년 수상자 마틴 에반스 등 7명 중 한 명을 골라 연구 분야의 궁금증부터 실험 과정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 과학자로서의 길, 진로 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대화를 90분 동안 나눈다. 오후 5시30분부터는 2004년 수상자인 아론 시샤노버의 ‘의학연구에서의 생물학’, 1996년 수상자인 롤프 칭커나겔의 ‘대규모 질병 유행의 위협’ 등 3가지 주제 중 하나를 골라 1시간 30분간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마스터 클래스는 35세 이상의 젊은 연구자들이 주제에 맞춰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노벨상 수상자 및 다른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행사다.



오후 7시30분부터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나란히 앉아 음악 공연을 들으며 뷔페 식사를 즐긴다. 과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자리다.

사이사이에 해양생물학을 비롯한 독특한 분야의 연구 경향을 소개하는 짤막한 프레젠테이션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다. 최신 과학 토픽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의를 듣는 중간중간 휴식시간에는 신문·방송에서만 보던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커피를 따라 마신다. 장애인 학생에겐 앞줄에 서 있던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커피를 따라 주기도 한다. 수상자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질문은 물론 대화도 가능하다. 나란히 앉아 저녁을 함께 먹고 한 방에 모여 과학 공부나 실험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도 함께 물어본다. 노벨상을 받게 된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듣고 과학연구자로서 고민 상담도 할 수 있다. 세포생물학자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닌 화학상을 받은 이다 요나는 최신 과학토픽을 발표하는 말미에 가사와 육아도 함께 하는 여성과학자로서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나는 노벨상보다 내 손녀가 손으로 적어 준 ‘올해의 할머니 상’이 더 좋다”고 말해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행사장인 인젤할레의 로비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학생들이 격의 없이 커피 타임을 갖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커피도 따라줘

젊은 과학자들에겐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인 이런 일정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소도시 린다우에서 열린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 Meeting)’의 하루다. 올해로 64회를 맞는 이 행사에는 38명의 노벨상(올해는 대부분 생리의학상) 수상자들과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찾아온 600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35세 이하의 자연과학 전공학생),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의 집행위원장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은 “이 행사는 세대와 문화 차이를 뛰어넘어 과학자들이 서로 열린 교류를 이루는 게 목적”이라며 “배움에 열심이고 새로운 생각에 마음이 열려 있는 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영감과 꿈을 얻어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린다우 정신은 ‘교육하고 영감을 얻고 연결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학술 교류를 통해 재능과 새로운 통찰력을 최대한 키워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린다우 행사는 지금의 독일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일학술교류처(DAAD)의 마케팅 담당 루트 안드레는 “독일 연방정부 교육연구부는 2006년 11월부터 ‘아이디어의 나라 독일에서 연구하세요(Research in Germany, Land of Ideas)’라는 캠페인을 앞세워 국제교류와 협력을 통한 과학연구와 지식산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200개국 이상에서 연구자·과학자뿐 아니라 과학정책 담당자, 투자자, 미디어 종사자 등이 매년 100만 명 넘게 독일 과학계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입국의 살아 있는 사례다. 린다우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에서 온 생의학 박사 라우라 바르가스프라다는 “과학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이자 과학자로서 자신의 미래상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교류행사”라고 평가했다.



청년에 용기 주려 두 의사가 창설

이 행사는 독일이 전화의 상처에서 미처 회복되지 못했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남쪽 끝, 보덴 호숫가의 항구도시 린다우는 호수 건너 스위스·오스트리아와 마주보는 국경도시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야간에 불을 훤히 켜두면 연합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스위스인 줄 알고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1951년 이 도시의 의사인 구스타프 파라데와 프란츠 카를 하인은 전쟁의 상처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과학입국의 꿈을 심어주기 위한 정기 모임을 구상했다. 전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매년 불러 모아 독일 학생들과 만나게 해주면 과학지식의 교류를 하면서 젊은 과학 전공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전쟁의 혼란 속에 독일은 과학 교류에서 오랫동안 제외돼 세계적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 패전 직후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과학 전공자들의 사기를 북돋우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흡수하게 할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두 의사는 마침 인근 성에서 살고 있던 스웨덴 백작 레나르트 바르나도테(1909~2004)를 찾아가 후원을 부탁했다. 공작의 장남인 그는 평민과 결혼하는 바람에 작위가 강등되고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1905년 제1회 노벨상을 시상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의 손자라 노벨상과 인연이 있었다. 백작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성에서 가까운 린다우로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했다. 초청 받은 수상자들은 젊은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일 과학의 재건을 도울 기회라며 흔쾌히 참석했다.



현재는 매년 특정 분야에서 30여 명의 수상자와 600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70년대부터는 경제학상 수상자도 때때로 초청하다가 지금은 과학 분야와는 별도로 2년에 한번씩 교류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54년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레나르트 백작은 89년 물러나고 부인인 소냐 베르나도테 백작부인이 뒤를 이었다. 2004년 백작부인도 세상을 떠나자 딸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이 자리를 물려 받았다.



린다우=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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