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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 …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20 00:46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 (…) 오늘도 수고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바다만 바라보는 팽목항의 사람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故) 이다운군이 작곡한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인 남현철(17)군은 아직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내 심장’이라고 여기던 아들을 기다리며 아버지는 진도 팽목항에 아들의 기타를 가져다 놓았다. 기타엔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썼다. 남군처럼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19일 현재 10명(단원고 학생 5명, 선생님 2명, 일반인 3명)이다.



남군의 같은 반 친구 박영인(17)군도 여전히 찬 바다에 있다. 박군은 사고 다음날인 4월 17일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후에 이다운군으로 정정됐다. 당시 이군의 주머니에서 박군의 학생증이 발견돼 벌어진 일이었다. 박군의 축구화는 여전히 방파제에 놓여있다.



“배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어린 아이를 돌보느라 안 오는가봐요.” 아이들을 좋아해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던 허다윤(17)양. 그의 아버지 흥환(50)씨는 팽목항에 남아 딸이 좋아하던 목캔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알고는 용돈 한번 달라고 한 적이 없던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개나리색 니트를 입은 딸의 환한 웃음은 가족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아침마다 볼에 뽀뽀를 하던 예쁜 딸, 조은화(17)양의 어머니 이금희(45)씨는 한때 합성 영상 때문에 ‘가짜 학부모 선동꾼’으로 몰리기도 했었다. 수학여행비가 32만7000원이나 된다며 미안해하던 딸은 “배가 45도로 기울었어”라는 말만 마지막으로 남기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 7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을 잃었다는 황지현(17)양의 어머니도 이들과 함께 팽목항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양승진(57) 선생님과 고창석(43) 선생님은 여전히 아이들이 머물던 세월호 4층 부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씨는 학창시절 씨름선수를 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인성생활부장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던 그다. 고씨도 인명구조 자격증이 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9년 전 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도 가장 먼저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고 했다. 두 선생님 모두 구명조끼를 걸치고 있지 않았다고 생존 학생들은 증언했다.



권재근(52)씨는 지난 5년 동안 건물 청소를 해 모은 돈으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아들 혁규(6)군과 함께 찬 바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부인 한윤지(29)씨의 장례식은 팽목항 신원확인소에 안치된 지 85일 만인 지난 16일에야 치러졌다. 이들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지연(5)양은 큰아버지가 맡고 있다.



권씨 가족처럼 제주에 새 보금자리를 얻은 이영숙(53)씨도 바다에 있다. 얼마 전에야 서귀포시의 한 카지노에 처음으로 정규직 자리를 구했다고 했다.



유재연 기자·황은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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