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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U, 對러 추가 제재 추진 … 푸틴 고립 가속화 위기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20 00:37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격추된 다음 날인 18일 우크라이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흐라보브 마을에서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여객기 피격, 우크라 사태 '게임 체인저' 되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계획에 추진력을 더해 줄 수 있다. 300명에 가까운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책임이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에 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일거에 수세에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러시아 제재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제재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



오바마는 18일(현지시간) 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러시아에 이번 사건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하고 폭력적인 반군들을 지원해 왔다”고 말했다. 푸틴에 대해서는 “그가 비극을 낳는 대리전을 조종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가장 큰 통제권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일이 유럽과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을 고조시킨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크라이나 문제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리는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유럽의 러시아 제재 동참 중요”

미 의회는 여객기 피격과 관련해 러시아를 추가 제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크리스 머피 미 상원 유럽소위원회 위원장은 18일 새 러시아 제재 법안 제정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머피 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에 고강도의 추가 제재를 할 계획이라면 의회의 지원을 얻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추가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는 격추 사건 직전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오바마는 사고 하루 전인 지난 16일 러시아의 핵심 에너지 기업과 금융사를 대상으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주요 은행과 에너지·방위산업체가 미국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티와 민간 가스회사 노바텍, 러시아 핵심 국영은행 VEB와 가스프롬뱅크가 주요 제재 대상이다.



8개 무기 생산업체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푸틴과 가까운 이고리 쇼골레프, 세르게이 네베로프 러시아 하원 부의장, 분리주의 세력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연방보안국(FSB) 직원인 세르게이 베세다 등 개인 4명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에 책임이 있거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상황을 불안하게 만든 러시아 정치인·관리들에게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개인과 단체가 제재 대상이다.



미국이 독자 제재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 3월 유럽연합(EU)과 함께 결정한 제재 조치가 큰 효과가 없었던 데다 미국의 반복적인 추가 제재 위협이 ‘엄포’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크림을 병합한 이래 푸틴의 측근과 주요 기업에 대한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확대해 왔다.







“우크라 문제 남의 일 아니다” 유럽에 경종

러시아와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EU 회원국들은 추가 제재 동참에 주저해 왔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태 이후에도 유럽 정상들은 아직 추가 제재 동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에선 “차제에 러시아를 확실히 고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럽은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개입 수준이 높아지자 점차 제재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16일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 독립을 침해하거나 위협하는 기업을 제재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까지 제재 대상 개인과 기업을 선정해야 한다.



EU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유럽투자은행(EIB)의 러시아 신규 투자도 중단하기로 했다. EBRD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에서 총 790개 사업에 240억 유로(약 33조4600억원)를 지원했다. EIB는 2003년 이후 러시아에 16억 유로를 빌려줬다.



EU는 이미 2단계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 72명과 크림반도의 2개 에너지 기업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제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과 EU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자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차 브라질을 방문했던 푸틴은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완전히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미국과 미국민에게도 손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대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다른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에 비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우리 파트너들이 이런 길을 가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시진핑, 공정하고 객관적 조사 촉구

당장의 중대 사안은 역시 여객기 격추 사건의 소행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이다. 결과에 따라 향후 국제 정세의 주도권이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 러시아와 미국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지원한 우크라이나 반군의 소행임이 확실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정부는 MH-17편이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고 공식적으로 결론 내렸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오바마는 “분리주의 반군이 무장하고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는 정밀 무기와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는 바로 러시아에서 나온 것”이라고 적시했다. 발사 지점으로는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사이에 있는 스니즈네와 토레즈를 주목하고 있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문제의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친러 반군에 전달된 게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 14일 우크라이나 수송기 안토노프-26도 MH-17편 격추 때와 같은 종류의 러시아 영토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이 미사일 부대가 최근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역에 침투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러시아는 탱크·로켓·포·방공무기 등을 분리주의자들에게 집중 공급했다고 미 관리들은 주장한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책임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푸틴은 “모든 당사자들이 신속히 정전하고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가 19일 여객기 격추 사건의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장악한 반군의 감시 등 제약이 많아 진상규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객관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현장 접근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 30명은 1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피격 여객기 추락 현장을 방문했지만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9일 반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는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여객기 격추 현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긴급회의를 열어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객관적 국제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그는 18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함께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최대한 빨리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북한에도 주의 환기” 성명

우리 정부는 18일 피해자 유족과 피해국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했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피해자 유족과 네덜란드 등 피해국 정부 및 국민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하며, 이번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국제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국제법 및 관련 협약에 따라 각국은 민간 항공기의 안전 항행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사전통보 조치 없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북한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한편 MH-17편에 탑승한 에이즈 전문가의 수는 애초 보도된 100명이 아닌 6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국제에이즈학회(IAS) 회장은 “확인한 결과 사고기에 탑승한 동료는 6명이었다”고 밝혔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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