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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터넷이 먹통이라고 ? 그냥 기다려"

중앙일보 2014.07.19 00:38 종합 24면 지면보기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장혜경 옮김, 갈매나무

276쪽, 1만3000원




어찌 보면 자신감 넘치지만, 한 편으론 조금 비굴해 보이기도 하는 알쏭달쏭한 제목이다. 맥락을 알고 나면 미소가 번진다. 40대 중반, 불청객처럼 찾아온 노화의 징후에 당황한 남자가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나이 때문에 나타나는 몸의 치욕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라며 “노화의 시간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자기 몸을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남자는 이 시점에서 젊은 시절 사귀었던 괴팍한 여인을 떠올린다. 다혈질에 죽 끊는 변덕으로 그를 괴롭혔던 여자는 말했었다.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날 오래 참지 못할 테니까.”



 이런 식의 책이다. 뜬금 없는 상황에 대해 농담 따먹기로 일관하다 난데없이 툭, 고개를 끄덕일만한 통찰을 던져놓는다. 저자 호어스트 에버스는 만담가이자 독일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다. 택시기사와 집배원으로 일하다 ‘한가하기 그지 없는’ 만담가로 변신한 그는 일찍이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에서 좋게 말해 ‘한량’, 나쁘게 말해 ‘잉여’로 사는 법을 설파한 바 있다.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 새로 산 연필심이 끝까지 닳으려면 몇 번이나 줄을 그어야 할까 궁금해 1만 7000번이 넘도록 쉬지 않고 선을 긋는다. 그러던 중 문득 ‘이거 시간낭비 아냐?’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곧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그럼 안 되나? 어차피 내 시간인데!’



 이번 책에서는 마흔을 훌쩍 넘어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중년 잉여’의 삶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학부모 중 유일하게 출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단체로 끌고 캠핑을 떠나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도 남는 많은 시간은 동네 식당·술집·광장에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동네 인터넷망이 갑자기 말썽을 부린 어느 날, 그는 ‘되고죽기’의 해결책을 발견해낸다. ‘되기를 고대하며 죽치고 기다리기’의 준말인데, 인터넷이 먹통일 때 조급해하며 컴퓨터를 두들겨 패거나 컴퓨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악을 쓰는 것보다 압도적인 성공률을 자랑하는 방법이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어디 인터넷 연결뿐일까.



 “남을 공격하지 않고 여유만만하며 그럼에도 호기심과 즐거움을 잃지 않는” 그의 태도는 세상의 속도에 뒤쳐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얻을 수 있는 것부터 택하라’ ‘시간을 항상 잘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이 최고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등 책 속에 등장하는 궤변 같은 경구들에 밑줄 쫙쫙 그으며 읽게 된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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