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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건축 규제 너무 심한 샌프란시스코, 너무 헐거운 서울

중앙일보 2014.07.19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여름을 보낼 샌프란시스코에 얼마 전 도착했다. 공항에서 열차를 탔는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서울과 달리 고층 빌딩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고유의 도시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각종 규제의 결과다. 시각적으로 보면 규제의 결과는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문화 차원에서 보면 참담하다. 예컨대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머물고 있는 방 2개짜리 거처는 한 달에 3300달러(약 340만원)를 내야 한다. 주변 환경이 좋은 곳도 아니다. 코카인과 수상쩍은 인물들로 상징되는 동네다.



 히피 예술가들과 괴짜 공학 천재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독특한 곳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높은 주거비 때문에 괴짜 공학 천재들만 이곳에 살 형편이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왜 도시계획 규제를 약간만이라도 느슨하게 풀지 않는 걸까.



 만약 한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를 맡아 운영한다면, ‘럭셔리 리치 참-빌(Luxury Rich Charm-Ville)’ 같은 이름이 붙은 거대 아파트 단지가 1년도 되지 않아 곳곳에 들어설 것이다. ‘암 덩어리’ 같은 규제를 말끔히 없애버리고 건축회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게 만들 것이다. 집세도 적어도 조금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서울에서처럼, 잘 살피면서 걷지 않으면 공사장 구덩이에 빠질 뻔하는 일도 생기겠지만 말이다.



  서울 상황은 어떤가. 인사동 또한 특색 있는 곳 아니었던가. 이제 인사동은 쾅쾅 울리는 음악을 쏟아내는 화장품 체인점들과 호객하는 고함소리가 옛 모습을 대신한다. 삼청동 또한 예전의 운치가 사라졌다. 서촌은 아직 멋지다. 서촌이 같은 운명에 희생되기 전에 서울시가 나섰으면 좋겠다.



 지방은 또 어떤가. 차를 타고 남해 부근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화려한 바다 풍광을 갑자기 거대한 호텔이 가로막았다. 중세의 성(城)을 저품격(低品格) 버전으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순수한 형태의 자유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건물주가 러브호텔을 어떤 모습으로 짓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지적할 것이다. 러브호텔은 건물주 것이다. 그는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어차피 러브호텔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님들이 외면할 것이다. ‘흉측한’ 외양의 건물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돼 있다. 또 많은 사람이 ‘당신이 뭔데 미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느냐’고 내게 따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아무런 논쟁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발 좀 이런 건물 짓는 건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다고. 조닝(zoning)과 건축과 관련된 규제는, 샌프란시스코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서울을 비롯한 한국은 너무 느슨하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성(城)과 성(性)이 만나는’ 한국식 러브호텔은 없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서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는 마약과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특히 그렇다. 마약이 근본적으로 별 문제가 안 되는 한국과 대조적인 상황이다.(흠, 소주를 ‘마약’의 일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 서양인 친구들 중 몇몇은 한국의 마약 규제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마리화나를 딱 한 대 피운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또 사람에겐 자신들의 몸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견해에 대해 반쯤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내게는 마약이 일부 원인이 돼 비명에 죽은 사촌이 있다. 내 고향인 영국의 문화가 마약에 대해 덜 관용적이었다면(영국에서는 심지어 교도관들이 죄수들에게 마약을 판다), 내 사촌은 지금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정부가 뭔가를 규제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양쪽 입장을 각기 지지하는 극단적인 이념들이 있다. 그중에는 ‘자유’라는 이상을 기치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미국을 정의하는 이 ‘자유’라는 것은 ‘민주주의’나 ‘100% 자연 성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뜻이 제각각이다. 이런저런 이상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규제가 각 경우마다 낳을 실제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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