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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주웠다 … 한국인은 배운대로, 미국인은 상황 파악

중앙일보 2014.07.18 01:37 종합 2면 지면보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돈이 많이 든 부자의 지갑을 주웠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적군에게 쫓기고 있을 때 질식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는 아이의 입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울게 놔둘 것인가?’


도덕적 딜레마 때 뇌 MRI 촬영
한, 익숙한 문제 푸는 뇌 부위 반응
학교 때 윤리교육 많이 받은 영향
미, 생소한 상황 해결 영역 활성화
다양한 가치 충돌하는 문화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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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딜레마’로 불리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국인과 미국인의 판단 과정은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창우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개리 글로버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 한혜민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연구원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뇌 반응을 분석한 결과에서다.



 연구팀은 한국인과 미국인 각각 8명에게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제시한 뒤 가장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을 자기영상장치(fMRI)를 통해 분석했다. 특정 뇌 영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기존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어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가 확인되면 어떤 판단 과정을 거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엄밀한 검증을 위해 도덕적 갈등 상황을 두 부류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사람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경우의 딜레마를 제시했다. 대표적인 예가 부자의 지갑을 주웠을 때다. 다른 하나는 더 극단적인 딜레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명확하게 다른 사람이 희생될 수 있는 경우로 예를 들면 적군에게 쫓기는 상황이다. 이 딜레마들은 미국 하버드대 조수아 그린 심리학과 교수가 정리한 것으로 같은 대학 마이클 샌델 철학과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인명 희생이 따르지 않는 딜레마에 대해 한국인들은 익숙한 문제를 해결할 때 작용하는 뇌 영역(우측 중심후구)이 강하게 활성화됐다. 반면 미국인들은 생소한 문제 상황의 발견·해결 과정과 관련 있는 뇌 영역(좌측 내측전두회)이 더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가 두 나라의 상이한 교육 방식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했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윤리 교육을 받아온 한국의 경우 기초적인 도덕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중등학교 과정에서 도덕 딜레마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해보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딜레마를 생소하게 받아들인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사람 생명이 희생될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에서는 더 큰 차이점이 발견됐다. 한국인은 직관적 반응과 관련된 부위(우측 피각)와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통제하는 부위(우측 상전두회)가 주로 활성화됐다. 사회문화적 규범이 인식 속에 깊이 내재화돼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인은 직관적인 반응을 담당하는 부위가 한국인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다. 대신 가치 충돌을 해결할 때 사용되는 부위(양측 전대상 피질)가 더 활성화됐다. 정 교수는 “다양한 가치가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인명 희생 여부와 관계없이 답하는 시간이 비슷했으나 미국인은 인명이 희생되는 딜레마에서 답을 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정 교수는 “직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사회적 통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다”며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논문 ‘도덕적 결정 과정에 대한 문화적 영향’은 지난 3월 SCI 저널인 ‘행동적 뇌 연구(Behavioural Brain Research)’에 게재됐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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