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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엔 내 돈, 공화당엔 회사 돈 … 버핏의 이중생활

중앙일보 2014.07.18 00:49 종합 18면 지면보기
“진정한 신사는 정치 바구니도 하나만 갖고 있지 않다.”


[똑똑한 금요일] 정치자금도 포트폴리오 투자
개인적 후원은 신념 따라 … "민권 강조 지지" 민주당 돈줄 역할
반핵·이민자 단체도 지속적 기부
회사 돈 후원은 실익 따라 … 철도회사 인수 땐 교통위 의원 후원
예산 등 장악한 공화당에 뭉칫돈

 미국 ‘금융황제’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이 생전에 즐겨 한 말이다. 정치자금을 한쪽에 몰아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그는 개인적으로 공화당 골수 지지자이면서도 1884년과 18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스티븐 클리블랜드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했다. 전기 작가인 진 스트라우스는 『JP모건: 미국의 금융가』에서 “그는 정치자금 분산과 균형을 신사도의 하나로 이해했다”며 “하지만 후세 미국 부르주아들은 모건의 신사도를 본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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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미국 화학 재벌인 찰스와 데이비드 코크(Koch) 형제는 적은 세금과 작은 정부를 부르짖는 티파티의 후원자들이다. 반면 ‘헤지펀드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는 미국 진보인 리버럴 세력의 뒤를 봐주고 있다. 철저하게 진영논리에 따라 최대 자원인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의 귀재’를 넘어 ‘자본주의 현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83)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어떨까.



 이달 14일 정치자금 정보 하나가 공개됐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 처크 해스브룩이 공개한 선거자금 자료였다. 그는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네브래스카 주지사 후보로 나설 예정이다. 그의 정치자금 리스트엔 버핏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기부액이 10만 달러(약 1억300만원)나 됐다.



 특정 정치인에게 주는 선거자금 10만 달러는 꽤 큰 금액이다. 미국 기업인들은 정당 후원금으로 뭉칫돈을 내놓지만 정치인에게는 1만 달러 이하 소액을 준다.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다. 진보매체인 허핑턴포스트는 “10만 달러가 정치인에게 준 단일 기부액으로선 사상 최대 금액”이라고 전했다.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버핏은 1997년부터 직전까지 17년 동안 22만2000달러 정도를 선거자금으로 내놓았다. 그가 민주당 후보인 해스브룩에게 준 돈은 17년치의 45%나 된다. 통 크게 버크셔해서웨이 본사가 있는 네브래스카 주지사 선거에 뭉칫돈을 베팅한 셈이다. 그는 왜 그 많은 돈을 해스브룩에게 줬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대변인을 통해 “해스브룩이 뛰어난 주지사가 될 것으로 보고 지원했다”고 했다.



 버핏도 코크 형제나 소로스처럼 균형을 잃은 것일까. 아니다. 그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정치자금 동향을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FEC에 따르면 버크셔해서웨이는 올해 6월 말까지 199만 달러를 정치인들에게 뿌렸다. 공화당에 130만 달러 정도를, 민주당에 69만 달러 남짓을 건넸다. 65.3% 정도를 공화당에 몰아준 것이다.



 버크셔해서웨이가 공화당에 더 많은 돈을 준 것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FEC 자료를 보면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 공화당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경영전문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워싱턴 정치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버핏이 투자만큼이나 정치 베팅도 분산을 잘한 것”이라고 촌평했다.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다만 돈의 출처에 따라 의도와 목적이 다를 뿐이다. 버핏이 쌈짓돈으로 정치자금을 낼 때는 철저하게 자신의 정치·사회 철학에 맞춘다. 미 정치사회 관계망을 분석하는 머케티에 따르면 그는 핵무기 반대론자다. 노동자와 이민자 자녀의 교육과 복지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도시연구소 후원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버핏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돈줄이기도 하다. 버핏은 2008년과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선거자금 모금을 주도했다. 그는 재산이 628억 달러(약 65조원)나 되는 거부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 편에 섰다. 또 그는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버핏의 시각이 미국 부자들 사이에선 논쟁거리다(허핑턴포스트). 심지어 ‘부자들의 배반자’로 불릴 정도다.



 이런 버핏의 철학은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과도 완전히 다르다. 그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생전에 열렬한 공화당 당원이었다. 공화당 후보로 나와 두 차례나 하원 의원을 지냈다. 버핏은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난 60년대부터 아버지와는 달리 민권을 강조한 민주당을 지지해왔다”고 밝혔다.



 반면 그의 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비즈니스를 기준으로 정치자금을 대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로부터 올해 가장 많은 정치자금(3만1500달러)을 받은 존 코닌(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원내 부총무다. 버핏의 민주당 지원에 반감을 가진 공화당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베팅으로 풀이된다. 또 두 번째로 많은 후원금(2만8334달러)을 받은 빌 셔스터(펜실베이니아) 공화당 하원의원은 교통인프라위원회 멤버다. 최근 버핏의 철도회사 인수와 관련이 깊다.



 다음으로 많은 정치자금(2만4900달러)을 지원받은 미치 매코널(켄터키) 공화당 상원의원은 세입세출위원회의 실세다. 그는 의회가 연방정부 예산을 어디에 얼마를 쓸지를 결정할 때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버핏과 버크셔해서웨이의 자금은 월가뿐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스마트 머니(Smart Money)’로 통한다. 그의 성공이 투명한 시장원리와 현명한 투자원칙을 따른 것이어서다. 어느 누구도 그의 자금을 ‘눈먼 돈(Fool’s Money)’이나 ‘더러운 돈(Dirty Money)’으로 부르지 않는다.



 미국 정치전문 잡지인 슬레이트는 “기업들이 버핏과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를 받으면 시장에서 믿음을 사게 된다”며 “정치인들도 그의 후원을 받으면 선거라는 정치 시장에서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최근 보도했다.



 경영전문지인 치프이그제큐티브(Chief Executive)도 “버핏의 ‘워싱턴 친구 그룹(정치인들)’은 민주-공화 양쪽 사람들로 적절하게 이뤄져 있다”며 “그는 어느 한쪽의 질시나 비판, 견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전했다. 그가 ‘금융황제’ 모건의 분산과 균형의 원칙을 제대로 지킨 덕분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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