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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직격 인터뷰]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 연방하원의원

중앙일보 2014.07.18 00:20 종합 27면 지면보기
독일의 지한파 정치인인 하르트무트 코쉬크 연방하원의원(오른쪽)이 지난 9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만나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얻은 교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통일대박론이 독일 통일에 대한 관심을 다시 자극한 시점에 독일에서 한꺼번에 많은 통일 관련 인사들이 한국에 왔다. 지난 9~11일 이화여자대학교가 주관하고 중앙일보가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한 제13차 한독포럼 독일 측 참가자들은 한반도 문제에 구체적인 관심과 안목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토의의 성과는 풍성했다. 한독포럼 독일 측 위원장인 하르트무트 코쉬크(55) 연방하원의원을 만나 독일 통일의 속사정과 한국이 거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물었다.

"개성공단서 일하는 북한 사람 하나 하나가 혁명적 변화 경험"



김영희=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코쉬크 의원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코쉬크 = 그때의 서독 수도 본에 있었는데 연방하원의원인 친구가 “지금 빨리 텔레비전을 보라”고 전화를 했어요. 급히 텔레비전을 켰더니 동독사회통일당(SED)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가 동독 주민들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하고 바로 베를린 장벽이 열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김 =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 통일대박론을 얘기하자 메르켈 총리가 독일 통일도 행운(Glcksfall)이라고 말하여 한국선 화제가 됐습니다. 독일 통일이 행운이었다면 동독 주민들의 시민혁명은 설 자리를 잃는 것 아닙니까?



 코쉬크 = 메르켈 총리가 그런 표현을 쓴 건 결코 동독 시민들의 용기와 자유와 민주주의 열망을 퇴색시키는 게 아닙니다. 역사적인 문맥에서 볼 때 당시 국제 정세가 독일 통일에 유리하게 흘렀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모두 독일 통일에 찬성했고, 회의적 시각을 가졌던 주변 국가들도 태도를 바꿨습니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당시 유럽 정세가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로 행운을 말한 겁니다.



 김 = 아닌 게 아니라 75년 헬싱키 프로세스, 80년대 폴란드의 자유노조(Solidarity)혁명, 85년 고르바초프 집권과 신사고 외교 같은 것들이 독일 통일의 바탕이 되어 준 거죠.



 코쉬크 = 그렇습니다. 그건 일종의 모자이크이자 퍼즐 같은 것, 하나하나의 모자이크 조각, 퍼즐 조각이 기막히게 들어맞았어요.



 김 = 동방정책의 설계자인 사민당(SPD)의 에곤 바르가 독일 통일의 3대 공로자로 초대 총리 콘라트 아네나워와 통일 총리 헬무트 콜과 동방정책의 추진자 빌리 브란트를 꼽았습니다. 인상적입니다. 한국선 상대 정당의 업적 평가에 인색합니다. 브란트와 콜의 역할은 알겠는데 아데나워는 어떤 기여를 한 겁니까?



 코쉬크 = 프랑스,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과 적극적인 화해 정책을 펴서 뒷날의 동방정책의 궤도를 깔았어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것도 독일에 대한 이웃 나라들의 신뢰 회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어요. 그런 서방정책이 없었으면 동방정책이 통일로 결실을 맺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김 = 사실 동방정책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브란트도 인정했어요. 히틀러의 동유럽 침공도 동방정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 히틀러에 오염된 동방정책이라는 이름에 거부반응은 없었나요?



 코쉬크=처음에는 브란트와 에곤 바르도 동방정책을 신동방 정책이라고 불렀어요. 핵심은 ‘접근을 통한 변화’였습니다. 그건 동독을 포함한 바르샤바조약 국가들과의 접근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김 = 독일 통일 후 일부 옛 동독인들이 통일 후의 상황에 실망한 이른바 오스탈기(Ostalgie) 현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건 한국에 참고가 됩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통일 전의 북한 주민들이 통일의 결과에 실망하여 북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하니까요. 옛 동독인들은 왜 실망한 겁니까?



 코쉬크 = 옛 동독 주민 대부분은 통일에 만족합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도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는 겁니다. 통일에 실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통일 과정에서 변화한 경제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주로 고령층에서 실업자가 많았어요. 새로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스스로 루저(패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개성공단에 주목합니다. 분단 시절 독일에는 개성공단 같은 게 없었어요. 북한 사람들은 통일이 되기 전에 세계 경제의 경쟁체제에 맞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학습할 기회를 갖게 된 거죠. 나는 북한 쪽에서 개성공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확신한 것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 한 명 한 명이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한 체제의 우월성과 인간적인 환경을 체험하는 겁니다. 산업화된 남한 사회와의 접촉이 그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변화를 준다는 걸 확신했어요.



 김 = 외국인의 눈에 개성공단이 그렇게 보이는 건 고무적입니다.



 코쉬크 = 나의 개성공단 방문에 북측 고위간부들이 동행했는데 그들도 남북한의 젊은 남녀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일하는 걸 보고 많은 걸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김 = 이젠 동·서독 간 내적 통합이 이루어져 오스탈기 현상을 깨끗이 극복했습니까?



 코쉬크 = 큰 진척을 봤어요. 옛 동·서독의 젊은이들이 많이 상대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내 지역구인 바이로이트에도 옛 동독의 작센이나 튀링겐에서 온 젊은이들이 많아요. 젊은이들의 정신과 생활의 질이란 면에 있어서 내적 통합이 큰 진전을 보았습니다.



 김 = 갈 길이 남았다는 말로 들립니다.



 코쉬크 = 완벽하게 내적 통합이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엄청난 발전과 진전이 있었다는 건 확실해요. 스스로 소외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그들의 자녀나 자녀의 자녀 세대에 가면 충분한 내적 통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독일 연방정부는 통일 보고서를 계속해서 발간하여 사회·정치적 여러 분야에서 통합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금 독일의 실업률은 유럽 최저 수준이고, 특히 젊은 층의 실업률이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편입니다. 통일 과정의 어려움이나 최근 유럽 경제위기를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르켈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모두 동독 출신이니 옛 동독인들의 긍지가 얼마나 높겠습니까.



 김 = 코쉬크 의원의 부모님들은 지금은 폴란드 땅이 된 옛 독일령 슐레지엔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코쉬크 = 그렇습니다.



 김 =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72년 동·서독 간의 기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기민당과 기사당은 그 조약이 독일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하고, 기사당은 연방최고재판소에 위헌 소송까지 냈습니다. 슐레지엔 출신 부모를 둔 코쉬크 의원도 반대했습니까?



 코쉬크 = 그때 기민·기사당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는 분단 고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최고재판소는 동·서독 조약이 헌법에 합치한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통일이라는 과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래서 83년 출범한 기민당의 콜 정부도 더 많은 대화와 접근을 정책의 기조로 삼고 통일에 열성을 쏟았습니다. 



 김 = 한국이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핵심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코쉬크 = 독일 통일은 그 당시 유럽의 정치적인 환경, 그리고 미국과 소련 관계를 포함한 국제적인 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가능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헬싱키 프로세스와 동·서독과 미·영·불·소의 2+4전략이 매우 중요했어요. 한반도에서도 6자회담에서 북한 핵문제가 잘 해결되고, 6자회담을 동북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로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 통일의 외적 조건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프랑스·영국·폴란드가 독일 통일을 경계했습니다. 콜은 그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코쉬크 = 독일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신뢰였어요. 콜은 독일 통일이 유럽의 정치환경과 상치돼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했어요. 독일 통일과 유럽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콜은 통일 독일은 유럽의 통합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밝혔고, 그것이 유럽 통합의 첫걸음인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이어지고 유럽 단일 통화의 기초가 됐습니다.



 김 = 한국의 통일외교에도 해당되는 말 같습니다. 남북, 한·중, 한·일 관계의 정상화로 동북아 화해·협력·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통일의 외적 조건이겠습니다. 무엇보다 미·중 대결구도가 해소되고 최악인 한·일 관계가 복원되어야 하겠는데요.



 코쉬크 = 동감입니다. 한국 문제의 해법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의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과거부터 청산되어야 합니다.  



 김 = 그런데 아베의 일본은 과거 청산에서 독일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코쉬크 = 일본은 일본 경제의 미래가 지역의 신뢰와 협력에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독일이 유럽에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주변국들이 명백히 독일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독일이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은 과거사 청산을 넘어서 다른 국가와 이해하고 소통하는 다리를 놓는 것이 결국에는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김 = 북한에서 독일의 비정부기구(NGO) 활동이 아주 활발합니다. 독일은 평양에 상주 대사관까지 두고 있는데 북한과 독일의 정부 간 관계, 특히 경제 관계는 어느 수준입니까?



 코쉬크 = 현재는 실무 차원 접촉이 있는 정도일 뿐 고위급의 관계는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개선을 돕기 위한 인도적인 원조만 하고 있고 경제 관계는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북한이 동북아시아에서 생산적인 행동을 하고 6자회담에 건설적으로 참여한다면 북한과 독일의 관계도 저절로 좋아질 겁니다. 독일은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끊고 싶지 않습니다. 독일은 북한이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전제하에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김 =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에는 양자 간 포럼이 많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가 주관하는 한독포럼을 앞으로 어떤 차별화 방식으로 발전시킬 계획인지 독일 측 위원장의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코쉬크 = 이 포럼은 항상 양자 간의 중요한 주제를 논의했고, 독일과 한국이 공동의 책임하에 세계화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다뤄왔습니다. 앞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전문가들도 한독포럼에 참여해서 함께 해법을 찾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 =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한경환 중앙SUNDAY 외교·안보 에디터

사진=김상선 기자



하르트무트 코쉬크는 …



독일 연방하원의원.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1959년 태어났다. 부모는 현재 폴란드 영토인 오버슐레지엔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로 이주한 실향민이다. 사관생도로 독일 연방군에 입대했던 예비역 중령. 본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수학했다. 19세 때 기사당(CSU)에 입당했다. 독일 통일 직후인 90년 하원의원 당선 후 지난해 총선까지 7선. 지역구는 바이에른 주 바이로이트-포르흐하임이다. 지난해까지 앙겔라 메르켈 내각의 재무차관을 지냈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한파 의원으로 독한의원친선협회 의장, 독한포럼 공동대표다. 2002년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과 방한하고 2003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독일·한국-통일·분단』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 평화·화해, 그리고 통일의 길을 가는 한국』 『우정의 정원-독·한 관계의 과거, 현재와 미래』 등 한국 관련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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