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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근혜 통일론 이전 정부와 비교해보니

중앙일보 2014.07.18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한국의 통일은 원래 정치학자들에게 영원한 토론 주제다. 이제 한반도 통일이 경제·경영 차원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통일이 세계 경제에 엄청난 기회라는 ‘통일 대박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과 이번 통일준비위원회 출범으로 통일에 대한 논의를 상전벽해(桑田碧海)급으로 변화시켰다. 새로운 변화는 통일에 대한 대대적인 개념적·이론적 재검토를 요구한다.



 현재까지 전개된 ‘한국 통일론’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5대 이론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이념을 조합한 결과다. 이 이론들은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탄생했고 또 진화했다. 첫 번째 이론은 한반도 분단과 동서 냉전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그 핵심은 ‘북진통일론’을 비롯한 ‘무력통일론’이다. 남한 혹은 북한이 상대편을 말살하는 통일만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한다. 이런 ‘승자독식론(勝者獨食論)’의 관점을 채택한 것은 이승만·박정희·김일성이다. ‘무력통일론’의 시대에 남북대화는 금물이었다. 한국 내부의 정치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될 것을 각오해야만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고 동·서독이 통일됐다. 독일 통일을 부러워하는 한국은 이내 냉엄한 현실과 부딪치게 됐다. 통일의 희열을 맛보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통일부·한국개발연구원(KDI)·통일연구원(KINU)·골드먼삭스 등의 기관에서 통일 비용을 산출해 봤더니 규모가 대부분의 한국 국민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통일의 어려움과 위험이 알려진 후 두 번째 통일론이 부상했다. 통일 과정이 수반하는 엄청난 비용과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적어도 당분간은 통일을 바랄 게 아니라 피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경착륙(硬着陸)과 연착륙(軟着陸)이 중심 개념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경착륙을 피하려고 했다. ‘경착륙 회피론’은 냉전 종식 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까지 한국의 통일 담론에서 주류의 자리를 차지했다.



 1997년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제안했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한 무조건적인 포용 전략이었다. DJ의 자유주의적 정치 이념의 산물인 햇볕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승계했다. 10년 동안 유지된 세 번째 통일론은 이념뿐만 아니라 냉혹한 경제 현실을 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1997~98년의 유동성 위기의 여파로 통일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을 포용하는 가운데 점진적인 통일 이행, 즉 ‘연착륙’의 길을 열 필요성이 있었다. 햇볕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통일을 먼 미래로 미룬다는 관점이었다. 햇볕정책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통일을 뭔가 ‘나쁜 것’으로 인식하도록 사회화시켰다. 통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비현실적이며 뭔가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세대가 아니라 후세가 감당해야 할 과제로 만든 것이다.



 햇볕정책의 시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입주와 더불어 끝났다. 이 전 대통령은 기업가이지 이론가가 아니었다. 그는 통일을 실용주의자의 눈으로 조망했다. ‘실용주의 통일론’은 통일에 대한 준비를 역설했다. 통일은 내일이건 다음달이건 내년이건 언젠가는 들이닥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와 행운이 찾아왔을 때 통일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섯 번째 통일론은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다. 한반도 통일이 통일의 기쁨뿐만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에 성장과 투자와 평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이론이다. 다섯 번째 이론은 이전의 통일 논의를 모두 극복한다. 지난 15년 동안 통일은 뭔가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논의됐다. 박 대통령이 그리는 통일은 밝다. 황금빛이다. 놀라운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5개 통일론의 정책적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통일 논의를 장기적이 아니라 단기적인 관점에서 전개할 필요성은 이념적·정치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우선 북한 정권의 안정성이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제기된다는 것이다.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의 운명은 초읽기에 들어가게 된다. 한데 북한의 지도자에게 개혁 의지가 있다고 입증할 근거가 별로 없다. 북한 정권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각국 정책결정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둘째,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한·중 관계의 개선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최근 성공적인 한·중 정상회담으로 양국 간의 전략 관계가 심화됐다. 나는 양국 관계의 심화가 한·일 관계의 악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북·중 관계에 틈이 벌어진 것을 포착했다.



 한국은 새로운 기회를 통해 한·중 관계를 북·중 관계보다 더 긴밀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중국과 북한 해법을 타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라고 본다. 첫째,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됐다. 둘째, 한·미 관계가 강력해야 오히려 중국이 한국의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믿을 만한 것으로 보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미 동맹 없는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중국의 작은 지역 정도로 취급될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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