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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 대통령' 우남 이승만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4.07.18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일주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전 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7월 19일은 우남(雩南)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서거한 지 49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 대통령이 임기 동안 가장 잘한 일은 초등교육 의무화를 관철시킨 것이다.



 1949년 12월 31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장전’이라 할 만한 ‘교육법’을 선포한 날이다. 이 법엔 초등교육 의무화 등 대한민국 교육의 기틀을 다진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우남의 교육 투자에 대한 집념과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도 성취하기 힘들었을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 정도였다.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국민이 부지기수였다. 배고픈 국민을 위해서는 눈앞의 밀가루 한 포대를 배급하는 게 더 급했다. 어린아이를 위해서는 딱딱하게 굳은 우유가루 한 포대라도 미군으로부터 확보하는 것이 훨씬 긴요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빼빼 마른 아이들을 먹일 먹거리 수입을 제쳐두고 귀한 달러로 교육용 인쇄자재와 교과서 제작을 위해 종이를 수입해야만 했던 우남은 약소국 지도자들만이 겪어야 했던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기록을 보면 그 시절의 많은 지식층은 우남의 노선과는 달랐다. 돈이 있으면 교육보다는 수입 대체를 위해 설탕 공장이나 고무신·메리야스 공장을 먼저 건설해야 한다며 우남을 압박했다.



 하지만 우남은 당시 전체 예산 기준으로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교육법을 입안했다. 그는 전격적으로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선포했다. 이 사업을 위해 문교부 예산의 70%를 할애했다. 교사를 신축하고 선생님을 양성했다. 문교부 재정을 쥐어짜가면서 의무교육을 관철시켜 나갔다. 투자 대비 효과가 언제, 얼마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막막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우남은 교육이 살지 않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고, 교육을 살리려면 사명감에 불타는 교육자 양성이 필수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찍이 미국 교육의 탁월함을 몸소 체험한 사람으로서 공산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함을 굳게 믿었다. 자라나는 세대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심어주지 않으면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이 싸움의 최전방을 국가관이 확고한 선생님들이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 끼 밥을 덜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드는 교육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뇌공작과 선무공작이 활개치는 사회 분위기에 분노했다. 장기적 교육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교육의 최전선에 선생님들을 배치한 것이다. 그 사명을 다하라는 뜻으로 선생님들에게 병역을 일부 면제해주기도 했고, 군 복무기간을 파격적으로 줄여줘 학생 교육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당시 이 제도에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러나 우남은 교육자 없는 대한민국은 사공 없는 배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을 대접해 드렸던 것이다.



 현재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이 종북 좌파의 공격에 끄덕하지 않고 공동체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사실 이승만 대통령의 선생님들을 통한 학교교육 덕분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시민사회’에 대해 믿음을 가진 학자였다면, 우남은 미국의 교육제도를 신뢰했고 이 제도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었던 지도자였다. 정치적으로 여야를 떠나 공동체의 가치, 문화,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르치는 미국 교육에서 우남은 깊은 영감을 받았다. 우남의 정치적 조력자 올리버(R. Oliver) 박사가 우남을 대한민국의 ‘교육 대통령’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냥 나온 칭송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전교조 교사들이 서울역 상경투쟁을 벌였다. ‘전교조는 법외(法外)노조’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집단 조퇴 투쟁을 벌인 것이다.



 만약 우남이 살아서 이 광경을 봤다면 땅을 치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을 ‘불행한 역사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국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교사들이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에 참여하거나 각종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17개 선거구에서 13명의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됐다. 그중 8명은 전교조 출신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모든 교육감이 우남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계승했으면 좋겠다. 비록 우남에게 크고 작은 허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품었던 ‘교육입국’의 정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일주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전 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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