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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수사에 웬 꼼수 동원?

중앙일보 2014.07.18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범죄학자들에게 살인교사(殺人敎唆·murder instigation)는 흥미로운 연구과제 중 하나다. 흔히 ‘청부살인’으로 불린다. 돈과 권력, 욕망이 얽혀 빚어지는 이 범죄로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상 살인범죄는 계획자와 실행자가 같다. 하지만 살인교사는 계획자와 실행자가 각기 다르다. 가장 무서운 범죄가 살인이다. 대가가 수반된다. ‘부유층 범죄’라고 하는 이유다. 발생 건수도 많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전체 살인범죄는 2151건. 이 중 살인교사 범죄는 14건이었다.



 살인교사범은 살인범과 동일하게 처벌한다(형법 31조). 한 범죄학자는 "살인교사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 때문에 직접 피 묻히기 싫은 이들이 저지른다. 살해지시를 문자로 남기거나 계약서를 쓰는 바보는 없다. 수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알려진 청부살인 사건은 셋이다. 여대생 하지혜씨 공기총 살해 사건(2002년 윤길자씨 사주)과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재산관리인이었던 이모씨의 청부살인(예비) 사건(2007년),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강서구 재력가 송모씨 살인교사 혐의 사건이다. 대가로 지불한 돈 규모는 이씨 사건, 윤씨 사건, 김씨 사건 순이다. 이씨는 80억원을 빌려가 갚지 않은 사채업자 P씨를 살해해 달라며 실행범에게 3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았다. 판사 사위와의 불륜을 의심한 부유층 사모님이 하씨 살해 대가로 조카 등 2명에게 준 돈은 1억7500만원, 김씨는 빚 7000만원을 탕감해 주고 가족을 책임지겠다며 친구 팽씨에게 살해를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이씨는 살인 예비혐의로 기소는 됐으나 실행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수에 그친 점도 작용했다.



 김씨 사건은 윤씨 사건과 닮았다. 하씨를 살해한 공범들과 송씨를 살해한 팽씨는 모두 중국으로 도망갔다가 체포됐다. 하씨 살해범은 “고모(윤씨)로부터 살인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했지만 윤씨는 “하씨를 미행하라고 했지 죽이라고 지시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팽씨가 경찰에서 교사받았음을 시인하고 김씨가 완강히 부인 중인 것과 같다. 일단 윤씨와 공범 2명은 모두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검찰과 경찰은 살해에 성공한 후 당초 약속한 대로 ‘!’를 보냈다거나 김씨가 팽씨에게 세 차례 쪽지를 보내 “묵비하라”고 요구한 것 등을 근거로 혐의 입증을 자신한다. 5억2000만원의 채무 등 범행 동기도 뚜렷하다고 본다.



총학생회장 출신에 최연소 부대변인, 뛰어난 언변과 과단성을 겸비했다는 김씨는 어느 순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2명의 변호인을 사서 팽씨를 공격하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다. 결과는 속단하긴 이르다. 심히 걱정되는 건 송씨 금전출납장부 원본을 둘러싸고 빚어진 검경의 엇박자다. 경찰은 검사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를 꿍쳐 뒀다가 나중에 한 방 먹이려 했던 것 같다. 수사권조정 문제를 놓고 개와 고양이처럼 앙숙이 돼버린 두 기관이지만 본연의 임무인 수사에서만큼은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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