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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민이 밥맛을 잃는 이유

중앙일보 2014.07.18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1660년 6월 29일 이조참의 이경휘는 밤늦도록 퇴근도 못하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자신이 올린 인사 서류를 왕이 결재하지 않고 있는 까닭이었다.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지 아뢔도 왕은 묵묵부답이었다. 사실 왕은 한참 열 받아 있었다. 자기 병을 낫게 해준 의관 양제신을 수령으로 임명하라고 일렀건만 이름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엄한… 인사안을 고쳐 올릴 때까지 대꾸도 안 할 참이었다.



 애를 태우던 이경휘는 결국 반대를 꺾고 양제신을 금천 현감에 제수하는 안을 올렸다. 왕의 재가는 받았지만 본인은 벼슬을 잃고 말았다. 『승정원일기』가 전하는 현종 1년 때의 일이다. 요즘 청와대 인사를 보면 조선조의 이런 풍경이 절로 오버랩된다. 깜냥 안 되는 인물들을 지명해 놓고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하려는 오기 인사 말이다.



 현종 때가 어떤 땐가. 두 차례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는 당쟁으로 임금이 뜻대로 인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주문만 하는 신하들이 그깟 현감 자리 하나에 임금의 은인을 앉히겠다는 걸 반대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뭔 일만 있으면 개각하라고 난리를 치다가 막상 바꾸려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트집을 잡으니 열 받을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그만큼 인사가 중요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선 때는 인사를 정사(政事)라 했다. 인사업무를 맡은 관리를 정관(政官), 그들이 일하는 곳을 정청(政廳)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인사가 만사란 얘기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도 인사를 제대로 못해 국력을 까먹고, 백성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부 인사를 마치 식당 종업원 바꾸기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조금만 경력을 살펴봐도, 조금만 평판을 들어봐도 금방 드러날 허물을 못 보는지 안 보는지, 자질 논란 도덕성 논란에 지도자는 신뢰를 잃고 국가는 에너지가 새며 국민은 밥맛을 잃는다.



 현종이 뜻은 이뤘지만 신하의 준엄한 비판을 피해갈 순 없었다. 송시열이 가만 있을 사람이 아니다. “왕께서 양제신을 수령으로 임명한 건 목민관의 자질이 있어섭니까 아니면 공로를 치하하려 함입니까? 전자라면 정관이 공론에 따라 인선하는 것이니 군왕이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고, 후자라면 대신과 의논해 녹봉을 올려주시면 되는 겁니다.”



 지금 자신의 보스에게 이런 직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청와대에 과연 있을까. 누가 한 명만이라도 이름을 알려주면 참으로 기쁘겠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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