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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내유보금, 나눠먹기보다 투자 확대에 쓰여야

중앙일보 2014.07.18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내수부양책의 일환으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투자·배당·임금 등으로 흘러가도록 과세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경기침체의 원인을 가계소득 부진으로 인한 소비 위축 때문으로 보고, 가계소득을 늘려줌으로써 내수경기를 살리고 성장도 회복시킨다는 구상이다. 최 부총리의 이 같은 진단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헐어 배당이나 임금으로 돌리도록 강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의도하는 소비 증대 효과도 거둘 수 없다.



 우선 최 부총리는 국민경제의 총량지표와 개별기업의 미시적 재무지표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총량적으로 기업부문의 저축이 늘고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기업이 사내에 돈을 쌓아두고, 모든 가계가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정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줄여 배당과 임금으로 준다고 해서 전체 가계소득이 늘어나거나 소비가 진작될 수 없는 이유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인식도 잘못됐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에서 세금과 배당 등으로 외부로 나간 금액을 제외하고 남은 돈을 회계적으로 표현한 대차대조표상 자본 항목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사내유보금에 대응하는 자산항목은 이미 기업이 투자한 유무형 실물자산이 대부분이고 현금성 자산은 20%에도 못 미친다. 이 현금성 자산 또한 기업의 경영판단에 따라 장래의 투자재원이나 긴급한 자금소요에 대비해 남겨놓은 것이지 공돈은 아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투자할 여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 그 돈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설사 일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상여금으로 돌린다 해도 소비진작 효과는 미미하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을 정도의 기업은 극히 일부이고, 배당금을 받을 주주는 외국인투자자와 대주주, 기관투자가가 대부분이다. 배당 확대가 국내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고소득 대기업 임직원들에게 상여금을 더 준다 해도 양극화만 심해질 뿐 전반적인 가계소득 증대효과는 거두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계소득의 부진이 기업소득 증가 때문이라는 인식부터 잘못됐다. 가계소득 증가율이 둔화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수출제조업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떨어진 데다 자영업자들이 대거 몰락했기 때문이다. 고용 부진과 소규모 영세자영업의 수입 감소가 전체 가계소득 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가계소득 증대의 해법도 일자리 창출과 영세 자영업의 구조조정에서 찾아야 한다.



 굳이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가계소득 증대의 원천으로 삼겠다면, 이를 배당이나 임금으로 돌릴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 시간이 걸려도 규제완화와 서비스업 육성이 가계소득을 확실히 늘릴 수 있는 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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