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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법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16 23:30
서울 성일초 연구회의 김선엽·권하정·정우열(왼쪽부터) 학생. 이들이 만든 ‘학생 봉사 마일리지 도입에 관한 법률안’이 올해 어린이 국회 우수법률안으로 선정됐다.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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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전한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은 어른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위한 법을 직접 만든다면 어떨까요.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어린이들이 모여 법을 만드는 ‘어린이 국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토론과 논쟁, 타협의 과정을 거쳐 200개가 넘는 법안이 제출됐고, 이 중 17개가 올해의 우수법률안으로 선정됐어요. 소중은 어린이 국회에 참가한 우수법률안 선정 학생들이 만든 법 4개를 뽑아 어떤 법을 원하는지, 무슨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법 이야기
봉사 점수, 계단 안전, 급식 잔반…법으로 해결할 길 찾아봤죠







봉사활동 활성화를 위한

학생 봉사 마일리지 도입에 관한 법률안




누군가를 돕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지난 1월 어린이 국회 구성학교로 선정된 서울 성일초 연구회 학생들은 어린이를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끝에 봉사를 주제로 선택했다. 5학년 남자 9명, 여자 9명이 3개월간 토론과 연구를 하며 얻어낸 결론은 ‘봉사를 신나게 하자’는 것이었다.



“지하철역이나 도서관, 공공기관 등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다양하지만, 자발적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실적을 채워 상급학교 진학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연구회 대표학생인 정우열(5학년)군은 이왕 하는 것 즐겁고 신나게 하자는 취지에서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활성화하자고 생각했다.



법률안 결정에 의견을 모으는 서울 성일초 연구회.
법률안을 만들기 위해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를 활용, 봉사활동 관련 법부터 조사했다. 주변 친구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의 마일리지화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처음에는 법 제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실제 국회에서 발의하는 법률의 형식을 갖추는 일이 낯설어 힘들었다. 제안 이유나 주요 내용을 작성할 때는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해야만 했다. 결국 봉사활동 실적에 따른 마일리지를 부여하고, 이를 사용하거나 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해 어린이들의 자발적 봉사활동을 활성화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법률안이 도입된다면 봉사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일리지로 문화활동도 하고 기부도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랍니다.”



학교 내 계단 안전패드 설치

의무화에 관한 법률안




어린이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학교다. 경북 도산초 연구회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안전’이라는 주제를 택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어린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학교 내의 환경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자칫하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장소가 학교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계단의 경우 직각으로 모서리가 돌출돼 있기 때문에 넘어졌을 때 무릎 등을 다치기 쉽다는 점에 주목했다. “엘리베이터로 건물을 오르내리는 학교는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 계단을 이용하는데, 친구와 장난을 치는 일이 많아 골절(뼈가 부러짐)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고 봤죠.” 연구회 대표학생 석지호(5학년)군은 친구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삼았다.



정혜준 교사(가운데)와 경북 도산초 연구회 학생들.
연구회는 먼저 각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계단 안전패드 설치 현황 조사에 나섰다. 정혜준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4월 한 달 동안 서울·부산·대구·포항·구미·상주·영주에 있는 8개 초등학교를 조사했고, 안전패드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초등학생의 신체 특징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안전패드가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로 된 경우도 많았다.



이에 대해 넘어질 가능성이 더 큰 저학년을 기준으로, 눈에 잘 띄는 안전패드를 설치하자는 세부 조항(법률의 조목·항목)이 만들어졌다. 안전패드 하나 설치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지호군은 설명한다. “우리의 눈높이에서 조사하고 만든 법안이 도입된다면 학교 내의 위험 요소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의 물건 교환·환불 시

차별적 대우에 관한 법률안




물건을 사거나 환불 받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용품이나 간식을 사 먹는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등현초 연구회는 물건을 교환·환불할 때 느꼈던 차별 대우에 대해 알아본 후, 개선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기로 했다. 한 학급의 절반이 넘는 어린이들이 문구점이나 소형 마트에서 자신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거나 교환·환불을 잘 해주지 않는 문제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서울 등현초 연구회가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공론화(여럿이 의논하는 대상이 됨)해 법으로 만들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부 학생들만 겪는 문제인지, 다수가 공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연구회는 우선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사례를 겪은 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설문조사 방식으로 알아봤다. 그 결과 물건을 구매할 일이 많아지는 4~6학년 학생 상당수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해결 방안으로는 해당 업주에 벌금을 물리거나 영업정지를 시키자는 의견이 주로 나왔다.



연구회는 좀 더 완성도 있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소비자 분쟁 해결 사례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했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한국소비자원의 역할처럼, 어린이를 위한 소비자 전담창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여기서 나왔다. “어리다는 이유로 가게 주인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하거나 교환·환불 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률안을 만들었어요. 우리를 위한 전담창구가 설치된다면 권익보호의 길이 한층 다양해질 수 있겠죠.” 연구회 대표학생 신한솔(5학년)양은 법률안을 통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가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코(Eco) 포인트제도

법률안




서울 삼각산초 연구회가 만든 ‘에코 포인트제도 법률안’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환경오염과 경제 손실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에코(Eco)는 생태계(Ecology)의 줄임말로, 환경을 지키는 행동을 했을 때 포인트를 주자는 의미를 담았다. 연구회는 급식시간에 어린이들이 밥과 반찬을 남겨 버리는 양이 매우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전국 1만1000여 개 초·중·고교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하루 약 932t에 달하고, 경제적 낭비는 연간 18조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했죠. 환경오염 문제에 친구들이 적극 공감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기 위해 포인트제도를 도입했어요.”



법률안 초안을 발표하는 이유진양.
연구회 대표학생 이유진(5학년)양은 약 3주에 걸쳐 법률안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법률안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으로 제한을 뒀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실효성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또 불이익을 받는 학생이 생기지 않도록 법률안을 조정하는 과정도 거쳤다. 특정 음식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진 특이체질 학생과 질병을 앓고 있는 학생은 학교 보건교사의 확인 및 지도하에 자율급식의 권한을 갖는 것이다. “처음에는 포인트를 받기 위해 급식을 남기지 않으려 하겠지만, 법을 지키며 환경도 지킨다는 마음가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법률안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유진양은 강조했다.



어린이 국회는… 국회에서 10년째 개최하고 있는 입법활동 체험의 장이다.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이다. 각 국회의원 선거구(독립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는 단위구역)별로 1개씩 총 247개 학교를 선정해 지도교사와 학생 20명으로 ‘연구회’를 구성하게 된다. 연구회는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어린이를 위한 법률안을 만들고, 6월에는 국회 심사를 통해 약 20개의 우수법률안을 가려낸다. 7월이 되면 우수법률안을 제출한 연구회 어린이들이 모여 국회의원의 역할을 담당하고, 실제 국회와 동일한 입법과정을 거쳐 최우수 법률안을 가린다. 올해는 오는 25일 어린이 국회가 열리며, 여기에서 논의된 법률안은 정식 입법절차를 통해 법으로 확정될 수도 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gn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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