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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에 얽힌 사연, 수십 번 외워 설명했죠

온라인 중앙일보 2014.07.16 23:30
1 ‘사도세자와 정조’에 대해 설명하는 이명하 학생기자. 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중앙포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소중 2기 학생기자이자 시간탐험대 1기 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하입니다. 오늘은 제가 ‘역사 해설사’가 되어본 경험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이명하 학생기자의 도전! 역사 해설사] '사도세자와 정조'를 소개하다
여섯 살 때 사도세자 얘기에 눈물 났던 기억
발표 시작 애드리브로 써서 눈길 끌어



경기도 평택시 교육지원청은 매년 ‘평택 사이버 자유탐구 과학품제’를 실시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 과제를 선택해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고 탐구를 진행하면서 단계별로 사이버 멘토 선생님의 인증과 지도를 받는 제도예요. 마지막 5단계까지 최종 인증을 받으면 11월에 우수 보고서 발표회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상장도 받을 수 있어요. 명색이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제가 이렇게 흥미로운 기회를 그냥 지나 칠 수는 없겠죠? 선생님께 안내장을 받자마자 제 머리 속은 온통 탐구 주제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답니다. 그 때 머릿속에 ‘딱 이거다!’ 싶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수원 화성!



화성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건설한 계획도시였어요.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당시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노론을 견제하고 강한 왕권을 확립하려는 의도도 있었죠. 화성 건설을 통해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신도시를 만들려던 것이지요. 이에 설계를 맡은 정약용을 비롯해 채제공·박지원·홍대용·박제가 등 유능한 실학자·지식인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기와 녹로, 유형거 등 최첨단 기자재 사용으로 공사 기간이 놀라운 속도로 단축 되었다는 점, 기존과 다른 성곽 건축양식, 그리고 무엇보다 화성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 등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수원 화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탐구 주제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수원 화성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로 결정했죠.



저는 소중 시간탐험대 1기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이라는 곳을 알게 됐어요. 지난달 28일 회원들과 함께 하는 수원 화성 답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답사를 앞두고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어요. 수원 화성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집에서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했죠. 아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답사 준비를 하던 저에게 뜻밖의 기회가 주어졌어요.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진형 연구원님이 제게 ‘사도세자와 정조’ 부분 해설을 맡기신 거예요.



여섯 살 때였을 거예요. 저는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돌아가신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을 죽일 수 있는지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노론·소론…. 생각하기도 복잡한 그 당쟁이라는 건 도대체 또 뭐고요. 그 이후 역사에 대해 관심이 깊어진 것 같아요. 그러니 ‘사도세자 이야기라면 다른 인물 누구보다도 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기다리던 답사 날, A4 한 장 반을 빼곡히 채운 발표 자료를 차 안에서 읽고 또 읽으며 수원 화성 박물관으로 달려갔어요. 중간 중간 넣을 애드리브도 생각하면서요. 도착해 보니 의외로 참가자가 많아 당황했어요. 김진형 선생님께선 그런 제 팔을 잡아끌며 “이 학생이 오늘 여러분들께 사도세자와 정조에 대해 설명해 드릴 겁니다”라고 하셨죠. “우와~”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오니 더 긴장이 되기 시작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 현일초등학교 4학년 이명하라고 합니다. 저는 여섯 살 때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듣고 대성통곡을 한 일이 있어요….”



처음은 좋게 시작했으나 마이크를 잡은 손은 왜 이렇게 떨리고, 말은 또 왜 그렇게 빨라지든지요. 콩닥콩닥 심장은 방망이질을 치고, 수십 번을 보고 외운 원고도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엄마께서 “명하야 조금만 천천히 말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말조차 들리지 않았으니 휴, 제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 가시죠?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간 듯했어요.



박물관을 둘러보고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으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내내 아까 발표가 마음에 걸렸어요. 시큰둥해있는 제게 몇몇 회원 분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 오셨어요. 해설 잘 들었다고, 사도세자 이야기에 대성통곡을 했다는 게 사실이냐고 웃으며 칭찬을 해 주시더군요. 아! 그제야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이 났어요. 우울한 기분에 젖어 중요한 답사를 망칠 수는 없었죠.



지금 사람들의 기준에서 생각할 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기 위해 도르래가 설치 된 거중기를 사용했다는 점, 무거운 화강암을 나르는데 들어가는 노동력과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벽돌을 구워 사용했다는 점, 적이 성곽 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성벽을 비스듬하게 ‘홀’ 모양으로 쌓았다는 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화성을 탐구하면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설사로서의 특별한 경험은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어요.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태도로 배움에 임해야겠다는 걸 깨달았죠. 오늘처럼 ‘얼음’이 되어서 벌벌 떠는 일도 다시는 없어야겠죠. 과학품제가 마무리 되는 10월 즈음이면 ‘화성 박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 제가 배운 지식, 탐구결과를 다시 소중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명하 평택 현일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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