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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간 한심한 국회

중앙일보 2014.07.16 00:10 종합 33면 지면보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대표들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찾아 정의화 의장(오른쪽)에게 국민 350만1266명이 서명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지를 전달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천권필
정치국제부문 기자
15일 국회 본청 앞에선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출입구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데, 계단 아래에선 17일로 예정된 제헌절 기념 열린음악회 녹화를 위한 무대 공사가 진행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단식을 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풍악을 울린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열린음악회 녹화는 무기한 연기됐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걸까.



 발단은 이렇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세월호 후속 조치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16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했다. 양당 정책위의장은 11일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 입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16일 본회의 처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달라진 국회의 모습을 기대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약속대로 처리해야 한다며 14일부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간 기싸움이 열린음악회 취소 사태로 이어진 셈이다.



 핵심 쟁점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다. 새정치연합은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조사위원회에 특별사법경찰권한을 가진 조사관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형법체계의 근간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자 여야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새누리당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입법 지연의 모든 책임이 새누리당에 있는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한정애 대변인도 “세월호 특별법마저 무력화시키려는 새누리당이 바로 얼마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고 했던 그 당이 맞나 싶다”고 맞불을 놨다. TF에 참여한 한 의원은 “여야 지도부가 의원들과 협의도 없이 처리 기한을 못 박는 바람에 협상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며 지도부의 무책임한 결정을 비판했다.



 보다 못한 유가족들이 나섰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350만 명의 서명지를 전달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도 이날 학교 앞에서부터 국회의사당까지 도보행진에 나섰다. 국회의원들은 이 학생들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그동안 입버릇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이전과 다른 국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스스로 깨버렸다. 국회의 시계는 여전히 4월 16일 전에 멈춰 있다.



글=천권필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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