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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친박에서 '비박'으로 … 마침내 '무대' 홀로 서다

중앙일보 2014.07.15 02:09 종합 3면 지면보기



김무성 당 대표 당선까지
2007년 경선 박근혜 캠프 지휘
세종시 수정안 땐 충돌 직전까지
대선 선대본부장으로 일등공신
서청원 등 친박 포용이 과제



































2008년 4월 11일, 대구 달성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 사무실.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에서 배제된 뒤 친박 무소속연대를 만들어 12명 당선이란 공을 세운 김무성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한 번 안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박 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김 의원이 팔을 뻗어 오자 살짝 밀쳐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를 ‘동지’로 생각했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을 친박계 좌장으로 인정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뻗은 팔을 밀어냄으로써 박 전 대표는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거리를 확인했다. 이 간격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면서 6년여가 흘렀다.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무성 대표는 ‘원박(원조 친박)의 핵심’이었다. 현재는 비박(非朴)의 대표 주자로 불린다.



 이날 2위를 한 서청원 최고위원의 ‘박심(朴心)’ 마케팅을 뚫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면서도 기자회견에선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무대’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무성대장’의 줄임말이다. 1951년 부산에서 사업가이자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해촌 김용주 선생의 3남으로 태어났다. 중동고 재학 시절인 69년 3선 개헌 반대시위를 주도했다. 84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할 당시 창립 멤버로 참여해 통일민주당에서 정당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최연소 내무부 차관을 거쳐 15대 총선 때 부산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발을 들였다.



 박 대통령과의 본격적 인연은 2005년부터다. 당시 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이 그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면서다. 2007년엔 대선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사실상 경선전을 진두지휘할 정도로 박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판이했다. YS에게 정치를 배운 김 의원은 선이 굵은 타입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꼼꼼한 사람을 선호했다. 돈·사람 쓰는 문제에서 둘은 부딪쳤다.



 경선 이후엔 좀 더 본격화됐다. 김 의원은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라고 말해 왔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화해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달랐다.



 2008년 공천에서 탈락한 뒤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대통령의 바람대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둘의 관계는 이미 벌어져 있었다.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서 정면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후 김 의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원내대표를 맡으며 박 대통령과는 아예 접점이 사라졌다. 그러다 여야 총력전으로 펼쳐진 2012년 대선에서 다시금 박 대통령 곁을 지키게 됐다. 그해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김 대표는 “도와달라”는 박 대통령의 청을 받아들여 선대본부 총괄본부장을 맡았고,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된 날 그는 “그간 감사했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여의도를 떠났다.



 두 번의 공천 탈락은 그에겐 시련이었지만 그를 거듭나게 한 계기였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이미지도 각인시켰다.



 ‘무관(無冠)’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13년 4월 재·보선 때 그는 부산 영도에서 승리하면서 컴백해 1년여 만에 당권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다. 당장 7·30 재·보선이 코앞이다. 공천에 개입하진 않았지만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그에게 돌아올 수 있다. 조기에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각된 것도 길게 보면 운신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친박 대 비박으로 갈려 치른 선거구도도 발목을 잡을 요인이다. 당내 엄연히 존재하는 친박계의 견제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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