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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북 군부 롤러코스터 인사 … 김정은의 '군 경력 콤플렉스'

중앙일보 2014.07.08 00:26 종합 19면 지면보기
‘원한이 맺힌 사람이나 집단’을 ‘원수’(怨讐)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는 이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원쑤’라는 색다른 표현이 순우리말로 둔갑해 올라있죠. 북한에서 ‘원수’는 군 계급으로서의 원수(元帥)와 국가 수반을 의미하는 원수(元首)로 대부분 쓰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의 여파라고 합니다. 자칫 ‘김일성 원수’란 호칭을 쓰면서 주민들이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거나 혼돈하면 안된다는 이유로 아예 말까지 바꿔버린 겁니다.


군 복무 없이 2010년 대장 칭호
아버지보다 빠른 28세 '공화국 원수'
인민무력부장 2년여 동안 4번 교체
계급 강등 망신 줘 절대충성 요구 … 장성들 사격 시키고 바다서 수영
군부 장악 위해 고위층 군기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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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7월(당시 28세) ‘공화국 원수’ 자리를 거머쥡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0세(1992년4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41세(1953년2월)에 차지한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주민들은 ‘김일성 수령, 김정일 장군, 김정은 원수’로 각각 호칭합니다. 이를 혼돈했다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합니다. 19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모 보도를 하던 조선중앙방송 여성 아나운서는 “위대한 수령 김정일 동지가 서거하신지 3년째...”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신세가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추대된 2010년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 직전 군 대장 칭호를 받습니다. 사실 김정은은 제대로 군복무를 한적이 없습니다. 북한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포병학을 배웠다고 선전하지만 근거는 희박합니다. 북한이 그의 대학시절이나 군 관련 활동 장면을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죠. 김일성종합대 재학 사진과 군사훈련 모습이 드러난 김정일과 차이가 납니다.



이달초 훈련장을 찾은 김정은이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에게 지시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병서 총정치 국장, 변 국장, 이영길 총참모장, 김정은. [노동신문]
 김정은이 서둘러 원수에 오른 건 대장 계급으로는 군부장악이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김일성 대원수-김정일 원수라는 체제에 군부원로인 이을설 원수와 여러명의 차수(次帥)그룹이 있으니 그 아래 대장으로 군을 지휘하기는 어색했을겁니다. 김정일과 이을설이 같은 원수로 불렸지만 무게는 크게 다릅니다. 김정일은 ‘공화국 원수’로, 이을설은 ‘조선인민군 원수’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생전에 “원수면 다 같은 원수인줄 아느냐”고 말했다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북한군 장성은 별 하나부터 소장-중장-상장(上將)-대장으로 볼립니다. 그 위로 차수-원수-대원수가 있죠. 우리 군의 준장-소장-중장-대장과 차이가 납니다. 병력 119만명의 북한군에 대원수 2명(김일성·김정일)에 원수 한명(김정은) 체제인 걸 두고 계급 인플레라는 곱지않은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맥아더, 영국의 몽고메리 등 원수가 있었으나 2차대전 당시 연합군총사령관으로서의 계급이었기 때문이죠. 북한군 장성이 1300명 가까운 것도 우리 군(65만명)의 440여명에 비춰볼때 비대하다는 지적입니다.



 아무튼 일천한 군 경력 콤플렉스 때문인지 김정은의 군부장악 행보는 몹시 거칠어보입니다. 집권 3년차인 올들어서는 지휘관급 고위간부들에 대한 군기잡기가 가장 눈에 띕니다. 지난 1일에는 해군 장성들을 강원도 원산 인근 동해안에 불러모아 수영대회를 열었습니다. 또 5월에는 군단장급 이상 육군 간부들의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겠다면서 실탄사격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죠. 3월에는 비행능력을 테스트하겠다며 장성급 간부들을 소집했습니다. 13년간 공군사령관을 지낸 후 2008년 물러난 오금철 상장에게 미그기 조종간을 잡게한 건 대외적으로 군부 장악을 과시,부각하려는 김정은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빈번한 인사와 해임도 눈길을 끕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형국입니다. 우리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4월 김정각 임명을 시작으로 2년여 동안 4차례 바꿨습니다. 김정일 집권시기, 인민무력부장인 김일철과 김영춘이 각각 9년과 3년 재임했던 것과 차이가 나죠. 군 총참모장(우리 합참의장)도 이영호를 2012년7월 전격 숙청한 걸 포함해 3번 교체했습니다. 최고요직인 군 총정치국장을 맡아온 최용해를 2년만인 지난 4월 노동당 비서로 좌천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일이 집권초인 1995년 임명한 조명록 총정치국장을 15년간 한자리에 둔 것과 비교됩니다.



 계급도 춤을 춥니다. 대장 계급장의 별이 며칠새 한두개 사라지곤 하죠. 이런 공개 망신주기를 통해 군 간부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불어넣고, 절대충성을 요구한다는 분석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계급에 큰 의미를 두지않은 중국군의 문화를 받아들인 때문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1955년 첫 계급제를 도입했다 10년만에 폐지하고, 1988년 부활시킨 중국군은 아직 대장 계급도 없이 별 셋인 상장이 최고계급이죠.



 승승장구하는 북한 군부 실세도 눈에 띕니다. 대표적 인물이 국방위 설계국장인 마원춘입니다. 백두산건축연구원의 설계원이던 그는 평양시 살림집(아파트)과 마식령스키장 등 김정은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마음에 쏙들게 추진함으로써 권력 최측근으로 자리했습니다. 지난 5월엔 중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했죠. 최근 원산 일대에서 벌어진 김정은의 군사훈련 참관에는 총참모부 작전국장인 변인선 대장과 화력지휘국장 박정천 상장이 두드러집니다. 이들이 작전지도를 놓고 김정은과 머리를 맞댑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이영길 총참모장도 뒤로 밀릴 정도입니다.



 김정은의 군부장악 실험이 어디로 치달을지 주목됩니다. 군 원로에게 특각(별장)과 벤츠승용차 선물로 환심을 사고,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김정일과 다른 행보라 흥미롭습니다. 김정은은 최고사령관 직책 외에 국방위와 노동당 중앙군사위 등의 최고직책도 갖고 있습니다. 그가 군부를 확고히 장악했다는 관측과 아직 불안하고 미숙한 수준이란 진단이 엇갈리고 있죠. 김정은의 군부 장악은 병영국가 북한의 체제안정을 좌우할 아킬레스건입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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