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릉·홍은동 주택가서도 날뛰는 멧돼지

중앙일보 2014.07.08 00:23 종합 20면 지면보기
지난달 13일 오전 2시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주택가 인근 북한산 기슭을 배회하는 멧돼지 한 마리가 무인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지난 2012년 8월 서울 창덕궁에서 멧돼지를 소방대원들이 포획하는 장면. [중앙포토]
야생 멧돼지가 극성이다. 서울 아파트 단지까지 출몰하는가 하면 인명피해까지 일으키고 있다.

AI 탓 포획 못 해 개체수 늘어
연천서는 주민 공격해 중상
파주 4~6월 농작물 피해 24건
기피제 뿌린 농가 피해 없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A아파트 옆 북한산 등산로 입구 철조망에는 ‘멧돼지 출몰 주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북한산과 접해 있는 아파트 단지에 멧돼지가 가끔 내려오자 최근 아파트 관리사무소측이 걸어 둔 것이다. 지난달 26일 오후 8시쯤에는 홍은파출소측이 A아파트 등에 “아파트와 연결된 등산로에 멧돼지가 나타났으니 조심하라”고 통보했다. 아파트관리사무소도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홍은동 주민 김동식(53)씨는 “멧돼지 때문에 지난달부터 북한산 등산 횟수를 매월 4차례에서 1차례로 줄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언제 멧돼지를 만날 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는 지난달부터 서대문구 홍은동과 종로구 구기동과 성북구 정릉동 등 도심과 인접한 북한산에서 멧돼지를 봤다는 등산객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지역 상당수 주택은 북한산 자락과 거의 붙어있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수년 전 북한산 곳곳에 포획 틀을 설치했다. 하지만 올 들어 포획 틀에 걸린 멧돼지는 아직 없다.



 멧돼지로 인한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석장리 고구마 밭에서 일을 하던 이모(52)씨와 서모(50·여)씨가 멧돼지에 받혔다. 이씨는 갈비뼈 3개에 금이 갔고, 서씨는 머리를 다쳤다. 서씨는 “갑자기 산에서 나타난 멧돼지에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농작물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사는 윤행중(78)씨는 “지난달 1000㎡의 고구마 밭 대부분을 멧돼지가 파헤쳤다”며 “멧돼지 접근을 막기 위해 밭 주변에 그물망을 설치했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파주시에는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24건의 멧돼지 농가 피해가 접수됐다.



 멧돼지 개체수는 지난 겨울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AI(조류인플루엔자) 발생에 따른 이동제한으로 포획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야생생물보호관리협회 이용찬(56) 파주시지회장은 “AI 때문에 파주 지역에서는 겨울철 적정 포획 개체수인 150마리의 멧돼지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멧돼지는 생후 2년이면 새끼를 배고 한 번에 5∼8마리의 새끼를 낳는 등 번식력이 왕성하지만 천적은 없다. 1∼2월은 멧돼지 번식기다. 한국야생생물보호관리협회는 AI가 잠잠해진 지난 5월 말부터 멧돼지 포획 활동을 하고 있다.



 경남·북 지역에서도 멧돼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경남 의령군 봉수면 허영철(51)씨는 지난해 마을 인근 문중 산에 있던 조상 묘지를 새로 단장했다. 멧돼지가 봉분을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에서 복숭아를 기르는 김조완(62)씨도 멧돼지 피해를 봤다. 멧돼지가 2400㎡에 심은 어린 복숭아 나무를 쓰러트린 뒤 복숭아 열매를 전부 다 먹어치웠다. 김씨는 “가지가 부러지고 잘려나간 모습이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멧돼지 피해를 본 사람들은 ‘유해 야생동물 기피제’를 사용하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 대구테크노파크에 있는 전진바이오팜㈜이 개발한 것이다. 계피와 페퍼민트 등 허브류를 혼합해 만든 젤리 형태의 제품이다. 인체에 해가 없고 동물들의 후각·미각을 자극해 접근을 차단한다.



 허씨는 지난 4∼6월 사이 봉분 주변에 이 기피제를 뿌렸다. 그 결과 올해는 봉분 피해가 없었다. 멧돼지는 몸이 가려우면 봉분에 몸을 비비거나 지렁이 등을 먹기 위해 묘지를 파헤치는 습성이 있다. 허씨는 “발자국으로 볼 때 멧돼지들이 기피제가 있는 봉분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물러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조완씨도 최근 복숭아 밭에 기피제를 사용했다. 김씨는 “철조망까지 설치해도 소용없었는데 기피제로 효과를 봤다”며 “복숭아 밭 주변에 멧돼지가 왔다간 흔적은 있었지만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진바이오팜 이태훈(42) 대표는 “기피제는 동물을 살상하지 않고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친환경 재료”이라고 했다. 



송의호·전익진·황선윤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