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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비밀활동 자료, 20년 만에 공개

중앙일보 2014.07.08 00:20 종합 23면 지면보기
바실리 미트로킨이 KGB의 간부회의 녹취록을 직접 필사한 공책(왼쪽 사진). 2만5000쪽에 달하는 그의 KGB 기밀문서 필사본은 20여년 간 케임브리지대 처칠칼리지에서 보관돼오다(오른쪽) 7일 일반에게 공개됐다. [AP=뉴시스]


바실리 미트로킨
영국에서 악명 높은 ‘케임브리지 스파이’란 이들이 있다. 케임브리지대 출신으로 1930년대 소련 정보기관인 KGB에 포섭돼 활동한 5명이다. 이중 킴 필비는 영국 정보기관인 MI6에서 소련·동유럽 담당자로 일했으며 MI6 차기 책임자로 거론될 정도로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소련 정보를 다루는 이가 소련 스파이였으니 영국 정부로선 기가 막힐 일이었다.

무기 비축, 스파이 공작 등 19박스
기록책임자로 일하다 영국 망명
"죽은 뒤에 공개" 약속 지켜져



 이런 필비 못지 않게 KGB가 높게 평가한 이가 바로 코드명이 ‘홀라’인 멜리타 노우드였다. 37년부터 30여 년간 비철(非鐵) 연구 협회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얻은 정보를 넘겼다. 그 중엔 핵기술 정보도 있었다. KGB는 “ 충성스럽고 믿을만한 정예요원”이라고 극찬했다. KGB는 훈장은 물론 매달 20파운드의 연금도 12년 간 줬다. 이 같은 내용의 KGB 비밀활동 내용이 담긴 ‘미트로킨 문서’가 7일 일반에 공개됐다. 33박스 분량 중 19박스 분량이다. 케임브리지대 처칠칼리지에서 볼 수 있다.



 바실리 미트로킨(1922년생)은 80년대 중반까지 KGB에서 기록책임자로 일했다. KGB가 본부를 옮기는 과정에서 과거 기록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자 주요 기록을 일일이 필사했다. 무려 12년 간 계속한 끝에 문서가 2만5000페이지에 이르렀다.



 그는 소련이 해체된 뒤인 92년 라트비아의 미국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외면당한 뒤 영국대사관을 찾았고 그 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장차 미트로킨 문서로 불리게 된 문서도 함께였다. 90년대의 ‘스노든’이었다.



내용은 어마어마했다.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이 99년 의회에서 “문서 덕분에 안보 위협을 없앨 수 있었다. 정보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국이 정보를 공유한 덕에 미트로킨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던 미 연방수사국(FBI)도 “어느 출처를 막론하고 이때까지 받아본 정보 중 가장 완벽하고 방대한 양”이라고 감탄했다.



 실제 소련이 서구를 상대로 파괴공작을 하려고 곳곳에 무기를 비축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각국에서 활약 중인 스파이의 존재도 드러났다. KGB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 음모론을 퍼뜨렸는가 하면 칠레에선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도록 42만 달러를 지원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미트로킨은 망명 당시 ▶민간인 학자가 문서 정리에 참여하고 ▶자신이 죽은 뒤 문서를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는 등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실제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크리스토퍼 앤드류가 그의 문서를 기반으로 99년과 2005년 2권의 책을 냈다. 그나마 미트로킨 문서란 이름이 일반에 알려진 계기였다.



 이번 문서 공개를 계기로 나머지 약속도 지켜지는 셈이다. 미트로킨이 2004년 숨졌으니 사후 10년 만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바실리 미트로킨(1922~ 2004)= KGB 해외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다 기록 책임자로 일했다. 12년간 필사해 보관하던 2만5000쪽 분량의 KGB 기록을 들고 92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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