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겹겹이 규제 … 파생상품 직원들 다 짐 쌉니다

중앙일보 2014.07.08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이혜나 노무라 상무


올 초 맥쿼리증권의 파생상품 관련 인력이 모두 홍콩으로 갔다고 합니다. 한국 파생상품 시장이 좋아지기 어렵다고 판단한 거죠. 일부 직원이 서울에 남으려고 국내 증권사 이직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기러기 가족이 됐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한국 파생상품 시장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현장 속으로] 국내 홀로 남은 ELW마케터, 이혜나 노무라 상무
예탁금, 호가 제한, 거래 단위 확대 …
거래량 세계 1위서 11위로 떨어져
고부가가치 산업 성장 동력 상실
발전 방안 내놓아도 규제는 여전



 저는 한국 내 유일한 주식워런트증권(ELW) 마케터 이혜나(41)입니다. 6년 전만 해도 20명이 넘던 마케터들이 사라진 건 시장이 줄어섭니다. 2011년 초 30조원 규모였던 월 거래대금이 지난달엔 1조470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사실 ELW는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파생상품입니다. 특정 종목을 특정한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옵션으로, 유가증권 형태를 하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인기가 많은 건 소액 투자가 가능해섭니다. 삼성전자 주식 1주만 사더라도 130만원이 있어야 하는데 ELW는 몇백원만 있어도 됩니다.



 이런 매력에도 투자자들이 떠난 건 규제 때문입니다. 2011년 5월 선물·옵션에 적용되던 기본예탁금제가 도입됐습니다. 1500만원의 예탁금이 있어야만 투자가 가능해진 겁니다. 만원에서 백만원 단위로 투자하던 소액 투자자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죠. 다음해 3월엔 유동성공급자(LP)인 증권사의 호가를 제한하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100원에 거래되는 ELW가 있다면 108원이 될 때까지는 LP가 가격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가격이 촘촘하게 형성되지 못하자 개인도, 기관도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ELW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파생상품 시장 전체가 그렇습니다. 거래량 기준으로 2011년 세계 1위 규모였던 게 지난해 11위로 떨어졌을 정돕니다. 코스피200 옵션에 대한 규제가 결정적이었죠. 2012년 코스피200 옵션에 대한 거래단위를 5배(10만원→50만원) 올렸거든요.



 규제라는 게 이유 없이 생기진 않습니다. ELW의 경우 초단타매매자(스캘퍼)들의 불공정 거래가 문제였죠. 코스피200 옵션 규제는 2010년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이 도이치증권을 통해 대량의 주식을 매도, 주가를 떨어뜨린 후 파생상품 시장에서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11·11 옵션 사태가 발단이 됐습니다.



 파생상품 거래의 글로벌 허브인 홍콩에서도 이런 식의 불공정 거래가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시장을 직접 규제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 들어보셨죠? 초가삼간을 태우면 빈대는 박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살 집이 없어지죠. 홍콩이 시장을 직접 규제하지 않는 건 이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 더 이상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인건비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이 때 새로운 성장동력은 서비스업입니다. 금융업은 그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속하죠. 일자리도 많이 창출하고요.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이자 중국 시장의 관문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건 그래섭니다.



 주식시장을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요? 주식시장과 파생상품 시장은 함께 움직입니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서 삼성전자 풋옵션을 함께 삽니다. 주가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파생상품 시장이 주식시장의 위험 회피 기능을 한다는 얘기죠. 횡보하는 코스피 지수는 어쩌면 고사 직전에 놓은 파생상품 시장의 다른 얼굴일지 모르겠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파생상품 시장 발전 방안을 내놓은 건 환영할만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있는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더군요. 파생의 기본이 되는 상품이 잘 안되는데 신상품을 추가로 상장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정리=정선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