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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질 좋은 삶'을 찾아서

중앙일보 2014.07.03 00:05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지난 6월 30일 통계청은 소득뿐 아니라 고용·사회복지·건강·여가·환경·교육·시민참여·공동체생활·안전 등 12개 영역에서 70∼80개 지표를 사용하는 ‘국민 삶의 질 지표’를 측정해 발표했다.



 통계청에서 새 통계 수치 하나 만들어 냈는데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의미심장한 일이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최고의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국민 복지가 소득만으로 측정될 수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개발연대’에 경제성장은 우리나라의 지상목표였다. 정치인들이나 정책관료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고, 많은 국민이 그에 묵시적으로라도 동의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했지만, 이는 경제성장을 위해 당연한 일로 여겨졌고, 그 과정에서 과로사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군인처럼 여겨졌다. 노동자들이 겪는 산업재해와 인권침해, 혹은 공장들이 쏟아내는 환경오염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성장이 전부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불순분자’로 몰렸다.



 개발연대에 우리나라가 성장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서는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고라도 경제성장을 하는 것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아주 가난할 때 경제성장은, 단순히 외식 몇 번 더 하고 텔레비전 한 대 더 사는 문제가 아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성장이 잘되면, 국민의 영양상태와 위생상태가 좋아진다. 그리고 건강을 해치는 힘든 일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줄어든다. 많은 사람이 늘어난 소득으로 병원도 제때 갈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더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초 52∼53세에 불과하던 평균수명이 이제 80세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은 1990년대 이후 좀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소득이 국민 복지를 측정하는 가장 좋은 지표이고 따라서 경제성장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말석이기는 하지만 선진국 대열에 끼었다. 경제성장이 더 이상 생사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고, 따라서 먹고사는 것을 넘어선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이번에 통계청이 내놓은 지표는 바로 이러한 시각의 전환에 바탕을 두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국민 복지를 결정하는 데 소득만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측면들을 보아야 하며, 그렇다면 어떤 측면들을 보아야 하는가를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 삶의 질 지표’는 경제성장률과 같이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서로 성질이 달라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70∼80개의 요소를 함께 보는 다차원적인 지표이기에 하나의 숫자로 요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지표의 강점이기도 하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보아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이 되었건, 소득분배가 되었건, 환경문제가 되었건 한 잣대만 가지고 사회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아닌 다른 측면들에 주목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가 국민에게 ‘질 좋은 삶’을 제공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지표와 유사하게 다차원적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는 OECD의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를 통해 우리나라와 다른 OECD 회원국들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교육·안전·시민참여 등에서는 소득수준에 비해 훨씬 순위가 높지만 공동체생활·환경·건강 그리고 일과 여타생활의 균형에서는 OECD 최하위권으로,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여러 나라보다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들에서 개선 노력이 시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측면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에 ‘국민 삶의 질 지표’가 도입된 것을 계기로 그러한 대화를 진행하고, 그를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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