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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늘 속에서 공간과의 대화 시간과의 대화

중앙선데이 2014.06.28 02:05 381호 16면 지면보기
1 베르사유 궁에는 이우환의 신작 10점이 전시됐다. 한 어린이가 정원에 설치된 작품 ‘거인의 막대기’를 지나쳐 걸어가고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은 2008년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제프 쿤스를 시작으로 매년 한 명의 현대미술 작가를 초대해 궁전 내부와 정원에서 초대형 전시를 선보여 왔다. 무라카미 다카시, 자비에 베이영, 베르나르 브네,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주세페 페노네 등 세계 현대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작가들이 초대됐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계의 위상을 업그레이드시킨 프로젝트다. 그리고 6월 17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올해 전시의 주인공은 이우환(78) 작가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서 열리는 이우환 전시회 르포

2 어린 학생들이 이우환의 ‘베르사유의 아치’ 아래를 통과하고 있다.
“이 전시에 초대받았을 때 저는 매우 설렜습니다. 베르사유는 역사와 전통이 깊고 건축과 정원은 완벽합니다. 앞서 초대받은 작가들의 전시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꾸밀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틀리에나 공장에서 만들어 가져다 놓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나 공간과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느끼고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베르사유 궁의 정원은 완벽한 공간입니다. 저는 그 공간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완벽을 넘어서 공간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시키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우환 작가(사진)는 전시 초대에 대한 소감과 전시 구상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하다 보니 전시작 10점 중 실내에 설치한 작품은 면과 돌을 이용한 설치작품 하나고 나머지 9점은 야외에 설치됐다.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만 전 퐁피두센터 관장은 “이우환은 동양철학은 물론 서양의 문학과 철학까지 많이 연구한 사람”이라며 “덕분에 그는 이 두 개의 상이한 문화를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71년 처음으로 이우환을 만났다는 파크만은 작가에 대해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베르사유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설치한 높이 12m짜리 아치 모양의 대형 스테인리스스틸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치를 보면서 밑을 지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다른 공간으로의 문을 열어주고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이 작품을 만든 의도를 특별한 설명 없이도 받아들이고 있었죠”.

파크만의 말대로 마치 하나의 공간을 넘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이 거대한 아치에 대해 작가는 “언젠가 일본에서 비가 갠 후에 뜬 무지개를 보면서 무지개를 한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베르사유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하늘과 주변의 공간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3 베르사유 궁 정원에 전시된 ‘별들의 그림자’(부분) 4 ‘대화 X’
5 ‘바람의 판’
공간의 열림, 무한으로 열릴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
이번 전시에서 이우환 작가가 사용한 재료는 주로 철판과 돌이다. 그는 철판이라는 산업적인 재료와 돌이라는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베르사유의 너른 정원과 하늘을 캔버스 삼아 거대한 ‘그림’을 그려냈다. 베르사유 궁은 지난 한 해 동안 루이 14세의 수석 정원사였던 앙드레 르 노트르(1613~1700)를 재조명하는 전시와 행사를 기획했다. 베르사유의 너른 정원을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이 작가는 어느 순간 “르 노트르가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내가 만든 이 공간과는 다른 느낌의 공간을 만들어 다오’라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르 노트르가 설계한 인공 정원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300m 길이의 잔디밭에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철판들을 설치해 잔잔한 파도가 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과 잔디밭에서 흔들리는 풀의 움직임이 작품에서도 느껴졌다.

숨어 있는 듯한 공간인 ‘별의 보스케’에는 ‘별들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일곱 개의 돌덩어리가 새하얀 작은 조각돌들 위에 놓여 있고, 돌덩이마다 진한 회색 돌들을 깔아 인위적인 그림자를 만들었다. 시적인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 속에 묻힌 별들을 불러모아 광장을 만들어 사막에서 태양이나 별들이 비칠 때를 연상하거나 인공 그림자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대립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도록 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아폴론의 분수가 있는 보스케에는 땅을 파고 그 안에 거대한 돌을 놓아 이번 전시에 주된 영감을 주고 작가의 창작을 부추긴 천재 정원사 앙드레 르 노트르를 추모했다. 작품 이름은 ‘무덤-앙드레 르 노트르를 기리며’였다.

시와 명상, 공간과의 완벽한 융화
르몽드와 르 푸앙, 리베라시옹, 아트넷 등 프랑스를 포함해 전 세계 언론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프랑스 일간지 ‘누벨옵서버’는 “매우 시적이고 명상적”이라고 평하면서 “2011년 카트린 페가르 관장이 부임하면서 ‘베르사유 궁 현대미술 프로젝트가 성의 건축과 정원과도 보다 자연스럽게 융화되도록 하겠다’고 표명한 것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전시”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미술 월간지 아트프레스의 기고가이자 평론가인 파트릭 아미네는 “철판과 돌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빛과 그늘을 만들어내고, 공간과의 관계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사색하게 만든다”고 극찬했다.

16일 열린 VIP 오프닝 행사에는 세계적인 작가, 평론가,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만찬에는 베르사유 궁 현 관장인 카트린 베가, 전 관장인 장 자크 아야공,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만과 무라카미 다카시·다니엘 뷰렌·클로드 레백·자비에 베이영 등의 작가들,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자크 투봉 전 문화부 장관, 발레리 뒤퐁셀 피가로 수석 기자 등이 참석했다.

베르사유 궁의 현대미술전은 오프닝 때마다 전통을 고수하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이 성 앞에서 시위를 벌여 유명해졌는데, 올해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인 베르사유 궁에서 이우환의 작품들은 이 세상의 복잡함과 고단함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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