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중수첩’에서 추린 맛깔나는 술과 사람 이야기

중앙선데이 2014.06.28 02:22 381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최명 출판사: 선 가격: 1만5000원
술자리 에피소드만큼 기상천외한 게 없다. 다들 이성의 끈을 살짝 놓은지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장도 보태진다. 누가 몇 병을 먹었다느니, 누가 어디에 들어가 봤다거나 하는, 잘 믿기지 않는 일종의 ‘신화’다. 하여 술 마신 얘기란 다음 술상에 올려지는 또 하나의 ‘안줏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술의 노래』

한데 이 양반의 술 얘기는 좀 남다르다. 남들처럼 마셨으되 그게 다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시와 영화, 문학을 읊조린다. 뭣보다 함께 잔을 기울인 사람 이야기가 진하게 녹아 있다.

이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는 일흔넷의 원로 정치학자다. 1972년부터 30년 넘게 학교(서울대)에서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중국 정치사상을 가르쳤고 2006년 정년 퇴직해 명예 교수로 있다. 정치·철학·역사 등을 두루 꿰뚫으며 『소설이 아닌 삼국지』『소설이 아닌 임꺽정』처럼 전공이 아닌 인문학적 저술도 꾸준히 해 왔다.

제자들이 “아예 술 마시는 이야기를 쓰시라”고 주문했을 만큼 그는 술을 즐겼다. ‘음주’라는 제목이 붙은 제1장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춘천대첩’을 보자. 저녁 술자리에서 친구 여섯이 모였고, 갑자기 의기투합해 춘천으로 떠났다. 코냑과 양주 한 병씩을 비우고 다음날 아침 해장 소주를 마신 뒤 기차 안에서까지 음주가 이어지더니 결국 서울에 내려 다시 저녁 술자리를 가진 이야기다. 이외에도 술과 줄담배로 잠깐 졸도한 뒤 집에 돌아와 다시 친구와 위스키 한 병을 비운 추억에선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제2장, 3장의 부제는 ‘여행’ ‘등산’이지만 이것이 딱히 다른 얘기는 아니다. 다시 술 마신 얘기인데 장소가 달라졌을 뿐이다. 가령 프랑스의 쾨르 드 리옹이란 지역에 여행을 가서는 위스키 칼바도스의 증류 공장을 찾아 한 병 넘게 시음을 하고, 에스토니아의 자투리 자유시간에도 어김없이 맥주 가게를 찾아갔단다. 지리산 등반 중에는 너무 힘들어 괜히 왔다 후회막심이면서도 쉐이징팡·복분자술·잎새주·매실주·맥주·막걸리·소주·오가피주까지를 두루 섭렵했다.

이를 그저 한 주당의 과음 행적으로만 파악하면 곤란하다. 기실 책의 핵심은 ‘사람’이다. 서울대 교수 산악회, 서울대 출신 고등학교 동기 모임, 대학 동창들의 ‘청바지 모임’, 서울대 산하 ‘현대사상연구회’-. 필자는 박학다식한 멤버들의 면면을 술자리를 통해 슬그머니 소개한다. 김성복·리영희 등 국내 대표 지성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인물론도 담았다. 그러니 “인간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 술의 기운을 빌려 썼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부수적으로 책을 읽는 잔재미라면 필자가 소개하는 술과 안주다. 주조법까지 상세히 공개한 세계 최초의 칵테일 ‘올드 패션드’나 캐나다 위스키라는 로열 크라운은 과연 무슨 맛일까 침이 넘어간다. 바르셀로나에서 맛봤다는 최고의 맛, 그러니까 곱게 다져진 생선을 커다란 햄버거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새 접시에 옮기고, 캐비아 한 캔을 따서 그 위에 얹는 요리가 또 뭘지 입맛을 다신다.

책 제목의 ‘술의 노래’는 어쩌면 술을 빙자한 인간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좋은 술은 많다. 우리가 모르는 좋은 술도 많다. 그러나 안다고 해도 구하기 어렵고, 구해도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담소하면서 마시기란 쉽지 않다.” 필자의 고백처럼 인생도 술만큼 제대로 즐기기가 어려운 법이니.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