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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대리 등단하던 날

중앙선데이 2014.06.28 02:31 381호 30면 지면보기
그날 나는 한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신인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오후 3시에 사무실을 나섰다. 행사는 오후 4시부터였다. 무사히 20분 전에 도착한 나는 행사장 입구에서 발행인을 찾았다. 반갑게 나를 맞아주면 좋았겠지만 그는 너무 바쁘고 경황이 없어 보였다. 행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사항을 결정하고 지시하느라 또 그 와중에도 계속 들어오는 손님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로 자기 뒤에 수줍게 서 있는 남자를 잊은 것 같았다.

발행인 역시 시인이라고 들었다. 시인은 앞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뒤도 돌아보는 자다. 마침내 나를 발견한 그는 행사 진행을 담당하는 사람을 불러 나를 인계했다. 진행 스태프는 준비한 꽃을 내 재킷 앞주머니에 꽂아주었다. 행사장 앞쪽으로는 무대가 있었고 홀에는 원형 테이블이 열 개 넘게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자 사회자라기엔 너무 화려한 의상과 화장을 한 여성이 와서 내 차례와 동선 등 몇 가지 사항을 일러주었다. 나는 신인상 시상식 때 단상으로 나가 상을 받고, 준비해간 수상소감과 시를 읽으면 되었다. 팸플릿을 보니 식순 마지막에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가수의 이름이 사회자 이름과 같았다.

사실 나는 수상자가 아니다. 진짜 수상자는 이름도 김수상이다. 부친상을 당해 상주로서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모시고 사십구재를 준비하느라 서울에 올 수 없는 그를 대신해 참석한 것뿐이다. 당사자가 아니라 그런지 무대공포증이 심한 편인데 평소보다 덜 떨린다. 주변을 돌아보고 관찰할 여유까지 생긴다.

행사장에는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놀라운 점은 그들이 모두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나 빼고는 다들 시인이다. 행사장은 시인들의 사회다. 옆자리의 주최측 시인 몇이 시를 쓰는 것처럼 사뭇 심각하고 치열하다. 무엇을 넣고 뺄지, 어떤 순서로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시인들은 이런 자리에서도 시를 쓰는구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특별한 내빈 몇 분을 따로 호명하며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 범위와 순서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속과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은 시인도 의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호명되지 못한 시인 중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을 빠져나간다. 시인과 평론가와 교수와 혹은 그 둘을 겸하거나 그 셋을 겸하는 분들의 축하말씀이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처럼 이어진다. 어느 분의 긴 말씀이 끝나자 시인도 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수와 사회자를 겸하는 분이 우스개를 했다. “아가씨 치마와 선생님 말씀은 짧을수록 좋답니다.” 나는 웃었는데 그곳에서 웃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나는 단상에 오른다. 대신이긴 하지만 등단한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 나는 시인이 꿈이었다. 대학노트에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필사해 들고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읽고 암송했다. 나는 후배가 써준 당선소감을 읽고, “오후가 적막했습니다 막적이라 하지 않고 적막이라 하는 까닭은 고요한 것 곁에 쓸쓸한 것이 따라 눕기 때문이지요”라고 시작하는 당선작 ‘적 곁에는 막’을 읽는다.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옆자리에 앉은 시인들이 한 목소리로 시가 정말 좋았다고 인사한다.

가수의 축하공연이 시작될 때 나는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아직 바깥이 환했다. 토요일 오후가 적막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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