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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 비선에 너무 의존”

중앙선데이 2014.06.28 23:38 381호 3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정홍원 총리 유임을 발표한 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과의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출렁이는 모습이 심상찮다. 한국갤럽이 24~26일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42%에 그쳤다. 한때 60%를 넘나들던 지지율에 비하면 급전직하다. 부정률도 긍정률을 앞질렀다. ‘박 대통령이 직무를 잘못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이 48%에 달했다.

[긴급 좌담] 대통령 리더십,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엔 최근 박 대통령이 보여 준 리더십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고,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지 않는 과정에서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원칙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층이던 보수 진영조차 흔들리는 형국이다. 27일 오후 보수 논객으로 불리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와 전원책 변호사로부터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국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다. 진행은 박신홍 중앙SUNDAY 정치부문 차장이 맡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박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뭐가 문제인가.
▶전원책=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가 사퇴한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레토릭은 말이 안 된다. 청와대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면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야 했다. 귀국하고 만 이틀이 지나도록 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지 않은 건 사퇴로 몰아간 거다. 내가 죽이지 않을 테니 당신이 알아서 자결하라는 것 아니겠나.
이번 일은 박 대통령이 보수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사건이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 논란에 탈락했으니 보수주의자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 후보자는 보수주의라는 것 때문에 쫓겨나니 보수주의자조차 지켜주지 않는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대통령이 정 총리 유임 결정을 한 것도 민심의 눈치를 굉장히 본 거다. 국정 지지도가 60%에서 40% 초반으로 떨어져 당황한 것 같은데,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본다. 보수층 이반이 심각할 거다. 훼손된 리더십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레임덕이 너무 일찍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윤평중=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 낙마 과정에서 굉장히 무책임하게 처리했다. 당연히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으면 국회 인사청문회 낙마가 확실시되더라도 모든 걸 희생하고 나온 분에게 적어도 자신의 정견을 피력할 수 있게 해 줬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절차다.
박 대통령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신뢰와 원칙이란 고유 브랜드가 있고 진정성이 동반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자기 절제도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리더라면 꼭 갖춰야 하는 게 판단력이다. 대통령은 가능한 한 많이, 널리 듣되 결정할 때는 전광석화처럼 해야 하는데 최근 인사 난맥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계속 질질 끈다는 거다.
또 대통령은 디테일에 강하면서도 비전도 봐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나무는 자세히 보는데 숲을 보지 못하는, 시시콜콜 모든 것을 챙기는 만기친람형 리더십이다. 장·차관뿐 아니라 공기업 간부 자리도 여전히 많이 비어 있다는데 다 박 대통령이 결정하니 그런 거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박근혜는 나름 판단력이 있음을 증명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인사 문제에서 흔들리는 걸 보면, 이건 아니다 싶다.

전원책 변호사
-정치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왜 다른 것 같나.
▶윤=박 대통령이 정치인 시절엔 굉장히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껄끄러워도 김종인 박사도 모셔 오고 자기를 치받는 안대희씨도 데려오고…. 듣고 결정하니 큰 실수를 안 한 거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선 비선(秘線)의 보고에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
▶전=친박계 지도자 때는 결정해야 할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선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 너무 많아졌다. 박 대통령은 과거 장점이라고 여겨졌던 도덕성·결단력·용인술 중 결단력과 용인술을 지금 크게 의심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결단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 카리스마가 있었고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들 믿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곤 우선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일주일 안에 임명 못하더라.

-박 대통령 인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뭐라고 보나.
▶윤=인사권 행사의 치명적 문제점은 인사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막후에서 비선의 조언을 받아 결정한다는 거다.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도 총리와 장관 후보자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이건 현대 행정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다.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리적 결정이 이뤄지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비선으로 결정되면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인사 난맥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의 밝은 미래는 담보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직후의 난맥상을 보고 칼럼에서 ‘통치 불가능성’을 운운했다가 엄청 욕을 먹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정치적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거다. 1년4개월간 밤잠 안 자고 새벽까지 보고서를 읽었다는데 오늘날 결과가 어떻게 됐나. 아무것도 이뤄진 건 없고 정 총리 유임이란 대통령의 결정 자체가 희화화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마음에 너무 조급했다. 그러니 오히려 시스템 자체가 작동을 안 하는 거다. 늦기 전에 그런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책임윤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때 눈물을 흘리면서 약속하지 않았나. 책임총리 하겠다, 장관들에게 실권을 나눠 주겠다 했는데 정 총리 유임으로 식언이 돼 버렸다.
▶전=근본적으로 박 대통령이 대통령제는 물론 총리와 장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총리와 장관 후보자는 대통령이 직접 소개하며 ‘이래서 내가 지명했다’고 국민에게 브리핑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했으면 그동안 문제가 생길 여지가 상당히 줄어들었을 거다.
윤 교수가 비선 조직을 말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 국정기획수석 등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장관급조차도 논의가 안 된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짐작조차 못한 사람이 후보가 되는 식으로 몰래 검증해선 안 된다.

-정치권의 문제는 없나. 보수·진보 간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대결적 구조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윤=보수든 진보든 배제의 정치를 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보수를,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진보를 배제하는 정치를 펴왔다. 하지만 넓게 보면 진보에 동의하는 국민의 숫자가 절반이나 된다. 한국은 보수 우위의 사회였지만 진보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2012년 대선에서는 51대 49까지 확장됐다. 배제의 정치를 하면 어느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가능하면 외연을 넓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나라에 대한 헌신, 선공후사, 애국심, 정직함이다. 그런데 정치 권력의 최일선에 선 보수와 경제·사회·법조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는 지극히 천민적이다. 특권에만 연연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엔 지극히 인색하다 보니 한국 전체 보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전=올 오어 낫싱 현상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진보·보수주의자가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진보정책과 제대로 된 보수정책을 쓴 사례가 없다. 정당이란 정책과 이념으로 묶여야 하는데 보스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 정치를 할 뿐이다. 보스가 대통령이 되면 장관도 하고 공기업 사장도 할 수 있으니 대선캠프에 수천 명이 모여드는 것 아니겠나. 기본적으로 천박하고, 그러니 올 오어 낫싱이 되는 거다.
보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이다. 아무리 시장의 자유를 주장해도 도덕성이 없으면 사기꾼이 돼 버린다. 한국의 보수는 바로 도덕이 취약하다는 게 약점이다. 진보는 다른가. 이번 인사 논란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수·진보 진영 모두 앞으로 어느 후보자의 말 한마디만 떼어내 종북 프레임이나 친일 프레임으로 걸면 얼마든지 낙마시킬 수 있을 것이란 유혹에 빠질 거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가 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민도가 높아지고 도덕성과 결단력과 용인술 있는 분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정치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청와대는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전=그동안 인사수석실이 없어 이런 문제가 생겼나. 아니다. 검증은 민정팀도 하고 있었다. 다만 비선 라인에서 추천된다는 게 문제였다. 여든 야든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사람은 누구나 명성만큼 추악하다. 경쟁사회에서 어느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누구나 성인처럼 살지는 못한다. 돈에 있어서 깨끗한가,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다 했나 등은 봐야 하지만 모든 문제를 다 까발리듯 하면 어느 누구도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을 거다.
▶윤=인사수석실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동안 시스템에 따라 인사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거다. 또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선의 이야기는 듣되 그 모든 자료를 인사·민정수석실에 넘겨야 한다. 인사위원회에 외부 위원을 초빙해 난상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도 있다. 또 거기서 나온 결정을 대통령은 최대한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왕 노무현 정부에 있었던 제도를 살린다고 하니 더 거슬러 올라가 중앙인사위원회도 만들어 국가적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몇 만 명 축적했으면 좋겠다. 이전 정부에서 잘했던 제도는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개선안도 인사의 왜곡을 고치겠다는 대통령의 결단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전=역사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순 없는 자리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소신 있게 정책을 집행해 나가야 한다.
▶윤=박 대통령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건 식사정치다. 대통령은 늘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하지 않나. 밥을 함께 먹으면 무장해제가 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론 야당 정치인과 진보·시민사회 인사, 언론인들을 두루 만나 얘기를 듣길 바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유신 이전엔 식사정치를 잘 활용했다. 대통령이 자기 껍질을 깨려는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전=동의한다. 아침·저녁식사 때 야당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해 ‘밥 좀 같이 먹읍시다’고 청해 얘기를 들었다면 불통이란 말은 애초에 안 나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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