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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미안함의 두 종류

중앙선데이 2014.06.29 01:34 381호 26면 지면보기
집에서 아이들끼리 싸웠다. 점차 과열되는 조짐이 보였다. 큰애가 작은애한테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잘못했어. 사과해”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큰애는 한숨을 푹 쉬며 “미안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버렸다. 내용은 사과였지만 하나도 미안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은애는 사과를 들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했다. 나 역시 엉망이 되기 전에 마무리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새 여러 곳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먼저 대통령의 사과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장기화되자 결국 대통령이 나서 직접 대(對)국민 사과를 하면서 고강도의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유감과 대책 지시를 해오다 여론에 밀려 하는 모양새였다. 마지막에 살짝 눈물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한 편이라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두 번째는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사과다. 선거 초반 선두를 달리던 고 후보의 딸이 자신의 입장을 담으며 아버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판세가 급격히 변하자 고 후보는 유세차량에서 “딸아, 미안하다!”고 팔을 뻗으며 절규하듯 사과했다. 하지만 패러디가 난무할 만큼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감정을 한껏 담았다는 면에선 대통령의 사과와는 달랐다. 하지만 수세에 몰린 후보가 대중 앞에서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는 점에서 번지수가 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 두 가지 사과가 큰아이가 작은아이에게 ‘미안해’라고 한 말같이 느껴진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이런 표현은 적극적이지만 거기에 내포된 의도는 ‘여기서 끝내자’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잘못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은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요구를 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과의 표현을 이용한다. 그 안에 미안함의 진정성을 담기보다 미안함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훨씬 더 중시한다. 미안하다 했으니 이제 끝이라 여긴다. 나는 이를 ‘이젠 이 일을 잊어 달라’의 사과라고 부른다.

이와 다른 미안함이 우리 사회에서 최근 목격됐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와 리본에 담겨 있는 ‘미안하다’이다. 여기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다수 어른의 미안함이 담겨있다. 다른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 먹먹함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저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미안함은 앞의 미안함과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이 강할수록 이 일에 대해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우리가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할수록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이끄는데 더 효과가 있다. 이런 미안함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달이 지난 이 시간에도 여전히 속으로 우리는 조그마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뇔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온다. 이런 미안함은 그 사건을 영원히 잊히지 않게 한다. 잊지 않기 위한 미안함이다.

이 두 가지 미안함 중 어떤 미안함이 더 소중한 것일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미안함이 남용되는 지금, 모두가 진정한 사과의 본질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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