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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한·중 지도자들의 관계 … 2005년 한국 온 시진핑, 박근혜 환대 받고 '오랜 친구' 됐다

중앙일보 2014.06.28 01:45 종합 11면 지면보기
한·중 정상들 사이의 친밀감은 표정과 몸짓에서도 드러난다. 올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에선 주석에게 지한파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말 한국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십니까?”

박근혜·시진핑 성장배경·성격 비슷
말 잘 통해 만나면 예정 시간 넘겨
동갑 DJ·장쩌민 '궁합' 잘 맞아
장, 방일 중 한국 영공서 인사 메시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었던 한국의 한 인사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시 주석은 망설이지 않고 저장성(浙江省) 당서기 시절이던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과분한 환대’를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환대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당시 시 주석은 이해찬 총리를 예방하고, 여야 대표를 잇따라 만났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던 박 대통령은 지방 일정까지 취소하며 시 주석을 만났다. 이미 5세대 선두주자로 손꼽히던 시 주석과의 만남이 어떤 의미인지 간파한 것이다.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방한한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한 모습.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이 2001년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모습. 1993년 미국 시애틀 APEC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난 김영삼 대통령과 장 주석. [중앙포토]


 시 주석이 지난해 방중한 박 대통령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정치 명망가 자제로 태어났지만, 시련을 겪은 성장 배경도 비슷하다. 감정 절제에 능하며, 작심한 말은 다른 사정 보지 않고 모두 하는 성격도 닮아 있다. 첫 만남 때부터 30분 예정이었던 오찬을 2시간이나 넘겼던 두 정상은 지금도 만났다 하면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곤 한다. 10년 가까이 쌓아온 두 정상 사이의 남다른 신뢰가 양국 관계에 긍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 개인적 유대감이 최상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양국의 지도자들의 ‘궁합’이 좋았던 적은 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중국으로부터 ‘인민의 오랜 친구’라고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은 인민외교학회 초청으로 취임 전에만 중국을 세 차례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과거에도 중국 언론들이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는 내 활동을 비교적 소상히 보도했는데, 직접 가보니 내 저서들이 번역돼 팔리고 있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1996년 야당이던 국민회의 총재 신분으로 방중했을 때 중국 정부는 국빈들이 묵는 영빈관 댜오위타이(釣漁臺)를 숙소로 제공하는 예우를 했다. 한국 정치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주룽지(朱鎔基) 국무원 부총리가 김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롄에서 헬기를 타고 오기도 했다.



 이들은 2년 뒤 각각 대통령과 총리가 돼 다시 만났다. 주 총리 역시 문화혁명으로 20년간 농촌에서 고초를 겪은 경험이 있어 동병상련을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감옥에서 파리를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내년 초에 한국에 오시면 그 기술을 제가 직접 보여줄 테니 CC-TV 기자를 꼭 데려오세요.”(김 전 대통령)



 “김 대통령 기술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입니다.”(주 총리)



 김 전 대통령은 동갑인 장쩌민(江澤民) 주석과도 잘 통했다. 정상회담 때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하며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98년 방중해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을 선언하고 귀국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 일이다. 장 주석이 일본에 가기 위해 우리나라 영공을 지나며 비행기 안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기상(機上)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영공을 통과 중에 대통령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귀국의 번영과 한·중 양국의 발전을 희망합니다.” 김 대통령은 이를 ‘하늘에서 내려보낸 친구의 편지’라고 하며 장 주석의 마음 씀씀이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장 주석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형제의 정’을 논하는 사이였다. 두 정상은 93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처음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각국 정상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장 주석은 와인잔을 들고 맞은편에 앉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김영삼 총통 건배!’라고 수차례 건배 제의를 했다. 그렇게 10여 개국 정상 앞에서 나와의 특별한 친분을 보여준 것”이라고 썼다.



 이듬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을 때는 만찬 자리에서 장 주석이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이 기증한 호랑이 백두와 천지는 국립수목원에서 장수하다 2011년과 2010년 각각 폐사했다.



 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 사건 때는 두 정상의 돈독한 관계가 진가를 발휘했다. 북한이 베이징 한국총영사관에 있는 황 비서를 넘겨달라고 중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주한 중국 대사를 통해 장 주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황 비서를 북한으로 보내면 나와 주석의 개인적 관계도 다시 생각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고심 끝에 장 주석이 황 비서를 제3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망명이 성사될 수 있었다.



 한·중 관계가 위기를 맞은 것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 한국의 미국 중시 외교를 못마땅하게 여긴 중국은 2008년 이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의도적 결례’를 범했다. 방중 첫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동맹을 ‘냉전시기의 산물’이라고 폄하하며 뒤통수를 친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중국이 북한을 감싸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졌다는 후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중국이 유엔에서 북한을 비호하며 스스로 평판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공산당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한 고위 당국자는 “이후 이 대통령과 후 주석이 식사 자리에서 북한 지도자에 대한 솔직한 평가까지 귓속말로 이야기할 정도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고 전했다. 후 주석은 이 대통령 임기 때 세 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펑유란 책 읽고 절망 견뎌내” … 중국 사로잡은 박 대통령 기고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은 모두 갖춘 지도자.”



 중국의 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가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내놓은 평이다. 그가 언급한 조건은 ▶중국어 구사 ▶새마을운동으로 경제성장을 이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 ▶중국 성인들의 가르침을 접하며 시련을 이겨냈다는 일화 등이다.



 박 대통령이 2006년 방중했을 때 왕자루이 당시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사사여의(事事如意·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라는 뜻을 지닌 상상의 동물 조각상을 선물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은퇴한 친한파 중국 정치인들에게 옷을 선물로 줬는데, 옷 치수를 미리 파악해 맞춤한 듯한 옷을 선물한 게 입소문을 탔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정부는 교통을 통제하고 청나라 때 순금 식기까지 동원하는 파격적인 의전으로 화답했다.



 박 대통령이 중국 대중을 사로잡은 건 2007년 언론 기고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부모님을 모두 보낸 뒤 절망한 시기 중국 철학자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힘을 냈다”고 발언한 게 중국에서도 회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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