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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가 월수입 7800만원 … 막노동하다, 취미로 그리다 전업

중앙일보 2014.06.28 01:41 종합 12면 지면보기
“만화가 배금택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어요. 지우개질을 해야 할 원고가 천장까지 쌓여 있더군요. 잠도 안 자고 계속 지우개질을 하는데 이틀째 되는 날 갑자기 종이에 피가 쫙 뿌려지는 거예요. 손톱이 빠지면서 피가 난 거죠. 배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넌 미련해서 만화가는 되겠다’고요.”


한 달 방문 1700만 명, 웹툰 작가 전성시대
'도전 만화' '나도 만화가' 등에 응모
반응 좋으면 단숨에 인기 작가로

① 웹툰 ‘전설의 주먹’ ② 태권도 선수 출신 작가의 데뷔작 ‘폭풍의 전학생’ ③ 광고회사 출신 작가의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④ 천재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닥터 프로스트’. 작가도 명문대 심리학과 출신 ⑤ ‘더 퀸 침묵의 교실’ ⑥ ‘천하무적 홍대리’ ⑦ ‘엽기토끼 마시마로’▷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웹툰 작가와의 토크 콘서트’(5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격주 수요일 개최)에서 웹툰 ‘전설의 주먹’의 이종규(41) 작가는 자신이 만화가로 데뷔한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처음 만화를 시작한 것은 1992년으로 아직 웹툰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당시엔 신인 작가 혼자선 등단이 안 됐다.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7~8년간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만화를 배워야 스승의 소개로 등단할 수 있었다. 유명 작가 중엔 100여 명의 문하생을 거느린 이도 있었다.



 문하생 시절을 거쳐 이 작가는 97년 데뷔했다. 80~90년대는 만화잡지의 전성기였다. ‘르네상스’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의 만화잡지는 신인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등단하고 꽤 잘나갔어요. 만화의 전성기가 영원할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니더군요.”



 97년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성인만화 잡지들이 잇따라 폐간되고,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 이른바 ‘청소년 유해 만화’가 만화방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만화는 급속히 위축돼 갔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도 이런 추세에 한몫했다.





 출판만화 시장의 몰락이 계속되는 가운데 만화 시장은 웹툰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각 포털이 자사 방문객 수를 늘리기 위해 인기 웹툰을 무료로 연재하기 시작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위쪽부터 이종규, 강냉이, 이현민, 이종범, 김인정.
 웹툰은 출판만화와는 달랐다. 과거 한 명의 만화가와 다수의 문하생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창작 방식과 달리 웹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한 명이 모든 것을 했다. 인터넷에서 반응이 좋으면 단숨에 인기 작가가 됐다. 그림이 완벽하거나 서사가 뛰어나지 않아도 됐다. 이 작가는 웹툰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익힌 출판만화의 작법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웹툰에서는 그림을 멋지고 화려하게 그리는 게 오히려 거추장스럽더군요. 눈만 피곤하게 만들어요. 짧기 때문에 깊이 있는 감정을 묘사하기도 어렵고요. 사건 전개가 빨라야 해요.”



 웹툰 시대에는 만화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이들이라도 만화가가 될 수 있었다. 각 포털은 ‘나도 만화가’ ‘도전 만화’ 등에 올라온 웹툰 중에서 인기가 있다 싶은 작품을 골라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연재하고 고료를 지급했다. 기존의 작법에서 벗어난 기발하고 독창적인 웹툰이 속속 등장했다.



 이달 11일 열린 2회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폭풍의 전학생’ 작가 강냉이(29)는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남자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꿨을 법한 ‘짱’들의 허풍스러운 주먹세계를 터무니없는 스토리와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그게 인기를 끌었다. “뉴질랜드에서 태권도장을 하기로 했는데 동업자가 돈을 갖고 잠적해 버렸어요. 그러고 나선 6개월 동안 막노동을 했는데, 첫날을 빼곤 한 번도 일당을 못 받았어요. 알고 지내던 사람이 만화를 배워보겠느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2년 동안 만화는 안 가르쳐주면서 온갖 잡일을 시키더군요. 노예나 다름없었죠. 그러다 어느 날 그의 기획안을 보고는 ‘내가 해도 그보다 잘하겠다’ 싶어 네이버 ‘도전 만화’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의 작가 이현민(33)은 원래 광고회사 직원이었다. 취미로 그린 만화가 유머 사이트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한 포털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질풍기획’에는 광고회사에 다니던 제 경험이 녹아 있어요. 그게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회사 다니는 것보다 웹툰 작가가 훨씬 힘들고 어려워요. 하루 18~20시간을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인내심과 체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온전히 혼자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웹툰 작가들에게 자기관리 능력은 필수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무한도전’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공포영화를 보면서 기운을 차린다는 등 각자의 스트레스 해소법들을 갖고 있다. 연재를 시작하면 다른 일은 못한다. 연재를 쉬는 동안 조각 같은 몸을 만들었다가 연재를 시작하면 푹 퍼진 아저씨 몸매로 변신하기를 반복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 손목이나 허리 디스크를 달고 산다.



 각자 다른 개성과 스타일을 가진 웹툰 작가들이지만 대부분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힘들어 하는 건 악의에 찬 댓글이다.



 “일주일 동안 밤잠 안 자가면서 그린 작품을 네티즌들은 1분 만에 다 보잖아요. 그러고는 비난을 하죠. 웬만한 비난은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가끔은 울컥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댓글도 있어요.”



 최근 만화영상진흥원이 웹툰 작가들의 심리치료 지원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출판만화 시절엔 팬들이 보내는 엽서나 편지가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하지만 웹툰에선 독자와의 소통이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10개 댓글 중 한두 개는 비난의 글이다. 온갖 비난에서 초연하기란 쉽지가 않다.



 웹툰 시대엔 취재의 중요성도 과거보다 커졌다. 읽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이 되려면 현실을 잘 반영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확한 취재가 필수다. 서사보다 공감이 중요한 게 웹툰의 세계인 것이다. “바쁜 전문직 종사자들이 무명의 웹툰 작가에게 시간을 내줄 리가 없잖아요. 취재는 해야겠고 만나주지는 않고 해서 가짜 명함까지 팠어요. 인터뷰를 해주는 이에게는 사례금을 주기도 했고요.” ‘닥터 프로스트’로 잘 알려진 이종범(32) 작가도 무명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게 취재였다고 말했다. 격투기 만화를 그리려고 격투기를 배워 선수가 된 작가도 있고, 커피 관련 만화를 그리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작가도 있다고 했다.



 지난 24일 네이버는 웹툰 연재 10주년을 기념해 각종 수치들을 발표했다. 하루에 620만 명 이상이 네이버 웹툰을 보고, 이제까지 아마추어 작가 13만여 명이 네이버에 자신들이 그린 웹툰을 올렸다. 한 달 순방문자 수(중복 방문자 제외)는 1700만여 명에 이른다. 신인 작가의 경우 수입이 월 150만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유명 작가가 되면 한 달에 최고 7800만원을 번다.



웹툰을 영화화하려는 곳이 늘어나면서 판권의 가격은 5000만~1억원을 호가한다. 웹툰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계속 확대돼 왔다. 현재 정식으로 국내에 연재 중인 웹툰의 수는 700여 개. 네이버·다음을 제외하고도 10여개의 웹툰 전문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웹툰 작가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토크 콘서트에서 만난 류광률(19·서울 장안동)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웹툰을 봤다. 언젠가는 꼭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미국 고교시절부터 한국 웹툰을 봐왔다는 백수정(22·서울 문정동)씨는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지난 5월 귀국해 웹툰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웹툰 작가가 되려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참가 문의도 많았다고 한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만화 관련 학과들이 늘어나면서 등단 경로도 달라지고 있다. ‘더 퀸 침묵의 교실’로 유명한 김인정(28)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만화를 공부하고 대학 만화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등단했다. 최근 늘고 있는 웹툰 작가가 되는 ‘엘리트 코스’다.



 김 작가의 말이다. “웹툰 작가로 사는 건 정말 힘들어요. 독자 트렌드가 굉장히 빨리 변하기 때문에 금방 잊혀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마감을 하고 내가 만든 작품이 웹에 올라가는 걸 보고 나면 정말 뿌듯해요. 작품이 쌓여가고 팬들이 생겨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어요. 다른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박혜민 기자

영화로, 드라마로 재창조 … 스토리 뱅크



‘웹툰 이전의 웹툰’으로는 ‘엽기토끼 마시마로’를 비롯해 ‘파페포포’ ‘천하무적 홍대리’ 등이 있다.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처음 등장한 건 2000년 인터넷 만화 사이트 ‘엔포’였다. 변기 뚫는 기구를 머리에 쓴 마시마로가 두둑한 배짱으로 곰을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음 카페에 연재됐던 파페와 포포의 사랑 이야기 ‘파페포포’는 단행본으로 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PC통신 ‘천리안’에 연재됐던 ‘천하무적 홍대리’는 직장인 소재 만화 붐을 일으켰다. ‘최초의 웹툰’으로 꼽히는 건 2003년 강풀의 ‘순정만화’다. 여고생 한수연과 평범한 회사원 김연우의 연애담을 다룬 작품으로 지금의 웹툰 형식을 처음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이후엔 ‘은밀하게 위대하게’ ‘전설의 주먹’ 등 영화나 드라마로 재창조되는 웹툰이 속속 등장했다. 영상콘텐트 산업의 스토리 뱅크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웹툰에 효과음악을 넣거나 동영상을 삽입하는 등의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독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한류 브랜드로의 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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