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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16> 참나무

중앙일보 2014.06.28 01:09 종합 20면 지면보기
① 꽃가루가 바람에 쉽게 날리도록 늘어진 참나무 수꽃. ② 참나무 숯. ③ 여러 종류의 참나무 잎. 왼쪽부터 상수리·굴참·갈참·졸참·신갈·떡갈나무 잎.
한반도에는 1000여 종(種)의 나무가 자란다. 넓은잎나무 무리 중에는 참나무가 가장 많다. 참나무는 한 종류가 아니다. 도토리가 달리는 몇몇 나무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잎 생김새와 도토리 모양에 따라 상수리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 6종으로 나눈다.


상수리·굴참·떡갈나무 등 6종 … 농사 흉년 때 도토리 많이 달려

 참나무는 대체로 자람터를 나누어 살아간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나 동네 뒷산에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흔하다. 땅의 힘이 좋고 습기가 많은 계곡에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버티고 있다. 산 능선 주변의 척박한 땅에는 신갈나무가 터줏대감이다. 떡갈나무는 습도도 적당하고 통풍이 잘되는 고갯마루를 좋아한다.



 참나무는 높이 20∼30m, 둘레 두세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가 된다. 목질이 단단하고 질기며, 쉽게 썩지 않아 예부터 각종 생활용품에 두루 사용됐다. 참나무의 한자 이름도 진목(眞木)이다. 재질이 좋은 진짜 나무라는 뜻이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은 참나무로 만든 움막집에서 살았다. 실제로 점말동굴을 비롯한 신·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많은 참나무가 출토된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기둥의 일부, 전남 완도 어두리에서 인양된 고려 초 화물 운반선의 일부 외판(外板), 경남 창원시 의창 다호리 가야고분 관재(棺材) 등이 참나무다.



 옛사람들이 쇠를 녹여 무기와 생활용품을 만들려면 섭씨 1000도 이상으로 온도를 올려야 한다. 석탄이 알려지기 전에는 품질 좋은 참나무숯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 외 흉년이 들 때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귀중한 구황식물(救荒植物)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종 12년(1517) ‘황해도에 참나무가 많이 있는데 흉년에 아주 요긴하니, 지방 관서마다 이삼백 석을 저장하되 따로 창고를 만들어 흉년에 대비하게 하소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인 선조 27년(1594)에는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도토리가 가장 요긴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도토리를 식량자원으로 귀하게 여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흉년이 들수록 도토리가 더 많이 달리는 참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풍매화(風媒花)인 참나무가 꽃가루받이 하는 시기는 모내기 직전의 늦봄이나 초여름이다. 비가 자주 오면 농사는 풍년이 든다. 하지만 참나무 수꽃가루는 암꽃을 찾아가기가 어려워 도토리는 적게 달린다. 먹거리가 많아졌으니 사람들은 도토리 먹을 생각을 안 한다.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이 계속되면 모내기를 못해 농사는 흉년이 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참나무 꽃가루가 쉬이 날아다녀 수정이 잘되므로 당연히 도토리 풍년이 온다. 도토리라도 먹고 살라는 자연의 조화는 이렇게 신비롭다. 문제는 도토리를 주워 모으기가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이다. 고려 말 유여형이 지은 ‘상율가(橡栗歌)’를 읽어보면 조금이나마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도톨밤 도톨밤 참밤이 아니련만/어느 누가 도톨밤이라고 이름 지었나/뙤약볕 한나절 내내 주워도 광주리에도 차지 않아/쪼그려 앉으니 주린 창자가 꼬르륵 꼬르륵 하네/해 저물어 찬 하늘의 별 쳐다보고 골짜기서 잠잘 때/깊어가는 밤, 이슬 맞고 온몸에 서리가 내리면/계곡에 울려 퍼지는 남녀의 신음소리, 아! 괴롭고 슬프구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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