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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 6·25와 그림, 그리고 사람

중앙일보 2014.06.28 00:43 종합 23면 지면보기
이수억(1918∼90)의 유화 ‘6·25 동란’(123×189.5㎝). 1954년에 그린 것으로 87년 개작했다. 개인소장. [사진 마로니에북스]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정준모 지음, 마로니에북스

360쪽, 1만6000원




전쟁은 예술가들의 삶 또한 할퀴었다. 김환기·유영국·장욱진·이상범 등은 6·25 발발 후 미처 피난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해야 했다. 근대 미술사의 공백기인 1950년부터 3년간을 기록한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의 행적은 이랬다.



 “일부는 서울 명동 마루젠백화점 1층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는 등의 선전화 제작에 동원됐 다.”(20쪽)



 피난지 부산에서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이중섭은 틈틈이 미군부대 배에 기름을 쳤다. 김병기는 역전에서 빵을 구워 팔았고, 김은호·변관식·장우성 등은 대한경질도기주식회사에서 장식용 접시에 그림을 그렸다. 전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뒤에는 이념 통제에 시달렸다. 장욱진이 그림에 붉은색을 사용했다거나, 이중섭이 화면 중앙에 굴뚝을 그렸다고 당국에 불려 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방대한 미술자료와 원로 작가의 구술을 토대로 잊혀진 시기를 복원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야 했던 화가들’ ‘1000일의 수도 부산의 미술’(2010) 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근·현대 많은 화가들이 월남과 월북이라는 상반된 길을 걸으면서 우리 근대미술사는 반쪽 혹은 남한 미술사에 국한되는 편향된 구조가 됐다. 60여 년간 제대로 된 왕래와 공동연구가 없었던 탓에 월북 작가들의 행적 등 북한 미술에 대해서는 접할 길이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책은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 대피 작전, 난민 처지에도 부산 광복동 다방거리에서 크고 작은 전시를 열었던 화가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도상봉의 ‘폐허’, 이응노의 ‘서울공습’, 김환기의 ‘피난열차’ 등이 이 시기의 증거로 남아 있다.



 저자는 “황해도에서 내려와 피난민 수용소에서 만나 결혼했고 평화시장을 기반으로 삶을 일궈내며 4남매를 낳아 기르신 실향민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친다”라고 썼다. 집집의 사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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