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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군대 경험이 남자에게 주는 것들

중앙일보 2014.06.28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젊은 남자들이 배우는 연애의 기술 중 ‘연인과 대화할 때 군대 경험을 화제에 올리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군대 경험을 자주 화제에 올린다. 공감할 수 없는 여자들은 물론 지루해한다. 나도 한때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남자들은 왜 술만 마시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것을 ‘수컷들의 몸집 부풀리기 작업’이라 여겼다. 그들의 이야기가 빛나는 무용담 위주로, 명백히 과장되게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이 무의식적인 자기 치유 작업을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부부 싸움을 할 때 아내들이 마음에서 풀리지 않은 옛날 일을 거듭 들춰내서 남편을 질리게 하듯이 남자들도 같은 이유에서 군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빛나는 무용담을 이야기할 때 그 뒤에 숨겨둔 아픈 기억들을 무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듯 보였다.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반복되며 무의식적 치유 작업을 하느라 거듭 표현되는 듯했다.



로널드 페어베언은 2차대전 때 일본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정신과의사다. 그는 당시 치료 경험을 토대로 한 연구에서 “전시의 군대 생활은 그 자체가 트라우마 상황에 가까우며, 군대 생활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도 외상이 될 수 있다”고 기록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군복무 환경은 사실 전쟁을 전제로 전쟁을 연습하는 곳이다. 그곳 생활이 얼마나 긴장된 날들의 연속일지 면회소만 다녀온 이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끊이지 않는 병역 비리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알고 보니 돈 있고 힘 있는 집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군복무를 마친 이들의 분노는 임계점까지 치솟는다. 국민의 의무가 아니라면 누구도 알토란 같은 청춘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군대 경험은 남자들을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 기능이 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분리되어 심리적 어른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조직의 법과 질서에 복종하는 마음을 습득해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어려움의 시간들을 넘어서며 강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을 정립해 내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의 군대 경험은 그 자체가 일종의 통과의례로 보인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작업일 것이다. 의식적으로, 체계적으로 통과의례 작업을 이끌어 준다면 아직 인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는 젊은이들을 더 잘 돌봐줄 수 있지 않을까, 꿈같은 생각을 해본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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