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전체가 펄펄 끓으며 포위망을 좁혀 오자 스즈키는 사건 발생 5일 뒤 기자회견을 열고 실토했다. “난 ‘빨리 결혼해라’는 야유만 했고, 다른 야유는 하지 않았는데 모든 발언이 함께 문제가 돼 사죄할 기회를 놓쳤다” “비방할 생각은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이었다. 처음부터 깨끗이 인정했다면 기껏해야 사회면 2단 정도의 기사를 1면 톱으로 키우고, 국제적인 스캔들로까지 발전시킨 건 순전히 스즈키 자신이었다. 너무나 늦은 고백이 큰 화를 불렀다.
#2.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 스즈키와는 반대로 그는 너무 일찍 속마음을 털어놓아 스스로의 발에 족쇄를 채운 경우다. 그는 요즘 지지자들로부터 “이게 무슨 평화의 당이냐”는 비판에 시달린다. 평화 정당을 자처하는 연립여당 공명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자민당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막을 유일한 브레이크로 여겨졌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연립 여당 간 협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책적인 의견 차이만으로 연립에서 이탈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연립 이탈을 각오하는 ‘배수의 진’을 치고 사생결단으로 달려들어도 역부족인 싸움인데도 그는 스스로 자신들의 발을 묶어 버렸다. 연립을 이탈하지 않겠다는 건 결국은 양보하겠다는 의미인데, 그런 장수 밑의 공명당 협상팀에 힘이 실리겠는가. 한때 “헌법 해석을 바꾸는 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저항하던 공명당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항복 선언만 임박했다. 다음 주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최종 OK 도장을 찍어 줄 예정이다.
정치인의 말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독(毒)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속의 우리 정치에서도 이는 여실히 증명됐다. 많은 정치인이 문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해야 할지 옹호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여론에 휘둘려 무심코 말을 뱉었다가 여론이 뒤집히자 다시 주워 담고 말을 바꾸느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슨 말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하느냐의 타이밍도 중요한 법. 지나치게 늦어도 매를 벌고, 너무 빠르면 자기 몸에 스스로 수갑을 채우게 된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