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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세일즈맨의 새로운 운명

중앙일보 2014.06.28 00:08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를 팔며 산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아홉 명 중 한 명은 세일즈 업무를 수행한다. 기업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재능이나 기술, 경험이나 지식을 팔며 먹고산다. 나 같은 교수 역시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을 외치는 꽃거지의 숙명을 타고난 지식소매상이다. 사람들이 매일 누군가에게 제안하고, 무언가를 팔고, 내게 필요한 자원을 달라고 설득하며 산다. 인간은 가진 것을 파는 동물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자신의 저서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현대인들을 세일즈맨으로 규정한다. 집집마다 방문해 전집을 파는 책 외판원이나 화장품 아줌마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고 해도 세일즈의 시대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21세기 세일즈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일침한다. 사람들에게 ‘세일즈맨’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조사해 보면 ‘강요하는’ ‘가식적으로 상냥한’ ‘외향적인’ ‘넉살 좋은’ ‘거짓된’ ‘교묘하게 속이는’ 같은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고 한다. 이런 통계결과를 보며 ‘세일즈맨은 원래 그럴 수밖에 없어. 그게 세일즈 업무야! 남에게 물건 파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라고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의 이론처럼 예전에는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더 정보가 많았다. 그래서 영업사원이 속일 수도 있었고, 당신에겐 이 제품이 필요하다며 강요할 수도 있었다. 제품의 우수성을 열심히 떠들어 설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해 영업사원 못지않게 많이 안다. 이제 영업사원은 고객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이 원하는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한 덕목이 됐다. 수많은 거절 속에서도 꿋꿋하게 도전하는 법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도 중요하다.



실제로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마틴 셀리그먼은 1980년대 중반 한 보험회사의 영업사원 100여 명을 대상으로 긍정성 지수를 테스트한 후 그들의 성과와 비교했다. 그 결과, 긍정성 지수 상위 50% 직원들이 하위 50% 직원들보다 37%나 보험상품을 더 많이 팔았고, 이직률도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흔히 세일즈맨은 넉살 좋고 외향적인 성격이 필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영업직원들의 외향성 정도와 업무 성과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히려 내향적인 면과 외향적인 면이 적절히 섞인 양향적인 사람들이 업무성과가 더 좋았다. 주장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직원이 영업사원으로 더 적절하다는 뜻이다.



판매량에 따라 수수료를 챙겨주는 세일즈업계의 관행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는 업계의 관행대로 60% 기본급여에 40% 판매수수료를 영업사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사례들이 생겼고, 협력해야 할 직원들이 서로 경쟁해 회사 전체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제도를 전격 폐지하고 기본급여를 90%로 늘리고, 회사 영업 이익에 비례해 10% 성과급을 다 같이 주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매출이 증가하고 이직률이 감소했다고 한다. 세일즈에 관한 한 업계의 관행을 재고해야 할 때인 것이다.



21세기 세일즈맨은 고객의 입장을 공감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큐레이션할 줄 알아야 한다. 사교적 열정이 넘치고 외향적이진 않더라도 거절의 바다에서 꿋꿋하게 다시 도전하는 긍정성이 필요하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세일즈맨이 더 오래 간다. 이제 영업사원을 채용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말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가 팔 수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일즈맨이면서도 그걸 모른다’. 기업의 영업사원이 아니더라도 내 가치를 팔며 살아가는 우리는 최고가 되기보다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들로 성숙해져야만 이 힘겨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회의를 할 때 고객이 앉아야 할 의자 하나를 반드시 준비한다고 한다. 이 빈 의자를 보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취지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타인은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는 그들을 위해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가? 그것이 세일즈맨의 운명을 타고난 우리가 평생 고민해야 할 인생의 영업 마인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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