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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때 네이팜탄 소녀 특종 … 63세 난 아직 현장기자"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28 00:02



총상 3번 … 퓰리처상 탄 닉 우트
종군기자 형 전사 … 16세에 이어받아
"소녀 싣고 병원행 … 사정사정해 살려"















닉 우트
“농 콰, 농 콰(너무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시) 외곽의 트랑 방 마을, 스물한 살의 AP 사진기자에게로 소녀가 울며 뛰어왔다. 무명옷이 불타 벌거벗은 채였다. 포연이 자욱한 마을을 등지고 공포에 질려 달리는 아이들, 초점이 나간 이 한 장의 흑백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아이콘이 됐다. 후잉 콩 닉 우트(63)는 이 사진으로 7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사진전(9월 14일까지) 개막을 맞아 한국에 온 닉 우트를 만났다.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땅딸막한 체구의 백발 노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월드컵 한·알제리전이 있던 날이었다. 취재 일정도 아닌데 여느 때처럼 네 대의 카메라를 짊어지고 한국에 온 닉 우트는 “새벽 거리응원 장면을 찍어 보려고 빨간 티셔츠도 장만했는데 못 일어났다”며 밤에 호텔방 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번개 치는 서울의 밤하늘이었다. 그가 전하는 42년 전은 이랬다.



치열한 전투였다. 아침 내내 폭발과 로켓포, 박격포 사격 장면을 찍었다. 비가 내렸다. 동료에게 ‘이제 그만 가지’ 하며 사진을 보내러 떠날 채비를 했다. 그때 네 개의 네이팜탄이 투하됐다. 근처 사원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아홉 살 소녀 판 타이 킴 푹도 그중 하나였다. 얼른 사진을 찍고 킴에게 물을 뿌린 뒤 다친 아이들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병원에서는 부상한 군인이 너무 많아 아이들까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취재 지원 비표를 흔들며 사정했다.



 “아이들을 맡기고 지국으로 돌아가면서 ‘사진이 제대로 찍혔을까’ 걱정했다.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없었으니까”라고 닉 우트는 돌아봤다. 전 세계 수많은 신문이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AP통신 사이공 지국의 신출내기 사진기자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됐다. “반전 분위기를 고조시킨 사진이었다. 많은 이가 그 사진을 내가 찍었다고 하면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후에 만난 참전 미군들 또한 ‘그 사진을 보고 이제 그만 싸우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들 말해 줬다.”



 호찌민 출신의 닉 우트는 열두 남매 중 열째였다. 부모는 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집안의 기둥은 AP통신 사진기자로 일하는 형이었다. 학교도 작파하고 띠동갑 형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우며 꿈을 키웠다. 종군기자 형이 전사한 뒤 AP통신에서는 후임을 구했다. 닉 우트가 자원했다. 열여섯 살 때 일이다. “죽음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징집돼 사람을 죽여야 했다. 사진 찍는 일은 반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으니까.”



2012 폭격 40주년을 맞아 다시 만난 닉 우트와 킴 푹. 킴 푹은 전쟁으로 피해를 본 아이들을 돕고 있다. [AP=뉴시스]
 전쟁 중 사진기를 들고 숱한 죽음을 목격했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난민이 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AP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지국에 발령을 냈다. 도쿄 지국에서 2년간 일할 때 10·26사태(1979년)로 처음 한국에 왔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은 99년, ‘네이팜 소녀’ 킴 푹(51)과 함께였다. 목숨을 건진 킴 푹은 전신화상으로 17번에 걸쳐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베트남 공산정권에서는 미국의 만행을 고발하는 선전에 동원되기도 했다. 쿠바로 유학 가 결혼한 뒤 신혼여행 경유지인 캐나다에서 망명했다. 킴 푹은 현재 캐나다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린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다. 그러나 72년의 그 사건은 나와 킴 푹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나로서는 AP에서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전 세계에서 내 이름을 아는 이들과 만나는 삶이 이어졌다.”



 전쟁의 참상을 담던 그의 카메라에는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이 찍힌다. 이 같은 그의 삶을 주변에서는 ‘지옥에서 할리우드로’라고 요약한다. 그는 “할리우드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출동한다”며 웃었다. 2007년 패리스 힐턴이 약물 복용으로 감옥에 가며 우는 사진도 그의 특종이다. 그날은 마침 그가 우는 킴 푹을 찍은 지 35년 되던 날이었다. CNN은 이 점을 부각하며 두 사진을 나란히 보도했다.



 “나 역시 전쟁에서 형을 잃었고, 세 번의 총상을 입었다. 집에 트랑 방에서의 그 사진을 걸어 두고 있는데, 종종 악몽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여전히 강한 이미지를 찾아현장을 다닌다”는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 준 것은 두 손주 사진이었다. “2년 뒤 은퇴하면 베트남에 돌아갈 생각”이라며.



권근영 기자



◆네이팜(napalm)탄=알루미늄·비누·팜유·휘발유 등을 섞어 젤리 모양으로 만든 네이팜을 연료로 하는 유지소이탄(油脂燒夷彈). 섭씨 3000도의 고열을 내며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든다. 현재 비인도적인 무기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



[사진 설명]



1. 1972년 1973년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전쟁의 테러’ 사진, 네이팜탄 폭격으로 옷이 불타 벌거벗은 소녀가 킴 푹이다. 72년 이 사진을 찍은 닉 우트는 “아이들이 ‘착 토이 쳇(나 죽어요)’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수라장이었다”고 돌아봤다. [AP=뉴시스]



2. 1973년 폭격 이듬해 킴 푹의 집을 방문한 닉 우트. 그 일 이후 킴 푹은 그를 ‘닉 삼촌’ 이라고 불렀다. [AP=뉴시스]



3. 오토바이 1대에 7명 다섯 아이를 오토바이 한 대에 태우고 피란 가는 부모. ‘네이팜 소녀’를 찍고 11일 뒤에 포착한 장면이다. [사진 AP/Ivary]



4. 우는 패리스 힐턴 2007년 6월 패리스 힐턴이 약물 복용으로 감옥에 갔다. 당시 차 안에서 우는 힐턴의 모습은 닉 우트의 특종이다. [사진 AP/Iv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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